임진왜란 전후 일본의 나가사키 항은 조선 침략의 전초기지였다. 포로로 잡혀온 조선인 악공과 도공 등이 모여드는 곳이기도 했다. 당시 이곳에 끌려왔던 조선인 노예 중 스페인이나 포르투갈 노예상에게 팔려 유럽으로 끌려가게 된 사람은 없었을까. 이 소설은 이 같은 상상에서 출발한다. 우리가 알지 못했던 ‘조선인 디아스포라(이산·유랑)’가 있지 않았을까.
구 씨의 신작 소설 ‘랩소디 인 베를린’은 이런 모티브를 토대로 전개된다. 이야기의 근본 맥에 닿기까지 작가는 수많은 섬세한 장치를 배치했다. 중층의 액자(額子)구조 형식에 시간적 배경도 17세기부터 21세기까지에 이르고 공간으로는 일본 한국 독일을 넘나든다.
소설은 2세기의 간격을 두고 어디에도 소속될 수 없었던 두 디아스포라의 불우하고 비극적인 삶을 교차시킨다. “다만, 모든 음악이 시도 때도 없이 사무쳤을 따름”인 이 두 음악가의 삶은 소설이 전개되면서 퍼즐을 맞춰 나가듯 점차 하나로 모인다. 구 씨는 ‘작가후기’에서 바흐를 힌터마이어의 실존 모델로, 윤이상을 김상호의 모델로 삼았음을 밝혔다.
역사적 개연성을 바탕으로 여러 세기를 넘나드는 상상을 뻗어가는 작가의 솜씨는 노련하다. 하나코의 애잔한 첫사랑, 김상호의 흔적을 찾는 하나코를 돕는 독일 유학생 이근호의 시선…. 겹겹으로 둘러싸인 다층의 서사구조 속에 조선인 디아스포라 문제가 가로놓여 있다. 묵직한 주제를 다루지만 등장인물들의 뚜렷한 개성과 감각적인 문체 덕에 잘 읽힌다. 문학평론가 이경호 씨는 추천사에서 “지금까지 한국문학에서 ‘디아스포라’의 주제를 이보다 방대하고 심원하게 그려낸 소설은 없었다. 정치적 억압과 유랑의 역경을 혼신의 열정으로 부딪혀 간 두 음악가의 삶을 추적하는 구효서의 소설은 ‘예술가 소설’의 새로운 전범을 열어 보인다”고 썼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