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처럼 배우고 또 배우자” 수단에 ‘교육의 등불’ 밝혀‘한강의 기적’ 비결 알고 싶어6년 유학통해 석·박사학위수단에 한국 알리는 가교역으로컴퓨터-어학 센터 운영빈국 탈출 위해 교육개혁 나서“이제 반은 한국인입니다”
알아자하리대 경영학과 교수인 압델랄 함자 씨가 대학 도서관에서 ‘한국의 선거정치’라는 한국책을 들어 보이고 있다. 그는 “우리 대학에서 이 책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은 아직 나뿐이지만 앞으로는 더욱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하르툼=남윤서 기자
○ 한국 경제성장 비결 알고 싶어
알아자하리대에서 가장 깨끗한 건물인 ITLC 외벽에는 수단 국기와 나란히 태극기가 붙어 있다. ITLC는 한국국제협력단(KOICA)의 지원으로 2008년에 세웠다. 한국어는 영어, 중국어와 함께 이 센터에서 가르치는 가장 중요한 외국어 중 하나다.
함자 씨가 ITLC 곳곳을 소개하며 말했다. 그가 이곳에서 일하게 된 데에는 ‘한국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라는 평가가 크게 작용했다. 함자 씨는 현지 한국대사관에서도 유명 인사다.
함자 씨가 대표적인 ‘친한(親韓)파’ 수단인이 된 것은 2000년부터 2005년까지 한국에서 정부초청 외국인장학생으로 공부했기 때문이다. 그는 아주대에서 경영학 석사학위를, 경희대에서 행정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에 오기 전 그는 당시 수단에 진출해 있던 한국기업에서 일하면서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함자 씨는 “한국어를 조금 할 줄 알았던 덕분에 장학생으로 한국에서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됐다”고 말했다.
수단에서 한국은 낯선 나라가 아니다. 수단 대중음악은 북한의 영향을 받아 우리 전통가요와 흡사하다. 또 수단의 가전제품 상당수는 한국제다. 특히 수단의 자동차 가운데 절반 이상은 한국산 자동차다.
함자 씨는 “한국에서 공부하는 동안 추운 날씨 말고는 어려운 점이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한국 정부에서 학비를 전액 지원해주고 생활비도 줬기 때문에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용돈만 조금 벌면 충분했던 것이다.
○ ‘교육 힘으로 수단 경제 일으켜야’
수단은 아프리카에서 가장 면적이 넓은 국가(한반도의 11배)지만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2500달러 수준으로 세계 181위의 빈국 처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유전을 가진 일부 계층이 GDP의 대부분을 차지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서민의 생활수준은 아프리카에서도 최하위권이다. 국토 절반이 사막인 수단은 사막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당장 먹고사는 문제가 시급하다. 깨끗한 물을 구하기 어렵고 의료기술도 낙후돼 있어 평균 기대수명이 51.4세로 세계 최하위권인 208위다.
당장 ‘핑크빛 미래’를 기대하기도 어렵다. 여전히 각지에서 내전이 계속되고 있고 미국 정부가 지정한 ‘테러지원국’의 하나로 경제 제재도 받고 있다. 정세가 불안해지자 기업들도 진출을 꺼리게 됐다. 한국업체도 한때 30여 개가 진출해 있었지만 지금은 3개뿐이다. 함자 씨는 “수단 경제가 고전을 면치 못하는 이유는 수많은 부족 간의 분쟁으로 국가기반이 무너졌고 대외적으로 부정적인 이미지만 알려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국에서 행정학을 전공한 것은 수단 경제발전을 위해서는 정책적인 접근이 중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수단이 발전하려면 교육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게 함자 씨의 생각이다. 그는 “지하자원도 없고 국토도 좁은 한국이 성장한 이유는 교육 덕분”이라며 “수단도 최근 교육에 힘쓰고 있다”고 말했다. 1980년대까지 수단에는 대학생이 5000여 명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20여만 명으로 불어났고 대학도 3개에서 70개로 늘었다.
○ “반은 수단인, 반은 한국인”
알아자하리대 경영학과 강의동. 1993년 설립된 이 대학은 학과가 23개인 종합대학이지만 시설은 낙후됐다. 최근 알아자하리대는 인터넷 환경이 갖춰진 현대식 캠퍼스로 이주할 계획을 세우는 등 환경개선에 나서고 있다. 하르툼=남윤서 기자
한국에서 생활한 뒤 개인적으로 어떤 변화가 있었느냐고 묻자 함자 씨는 웃으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아내 유스라 씨(27)와 두 살짜리 아들이 있다.
함자 씨는 “사실 가장 많이 변한 것은 일하는 기술과 자세입니다. 저 같은 경우 한국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기술을 많이 배워왔다고 할 수 있죠”라고 말했다. 한국 대학에서 학문뿐만 아니라 교수들의 열정과 강의기술을 배울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한국에서 유학한 뒤 사회적 지위가 높아졌다는 점도 큰 변화”라고 말했다. 한국에서 돌아와 대학교수로 임용됐고 ITLC를 책임지는 중요한 보직을 맡게 됐기 때문이다.
대학 도서관에서 기말시험 공부에 여념이 없는 학생들을 보며 함자 씨는 “이들이 수단의 미래”라고 말했다. 장서는 2만5000여 권으로 많은 편은 아니지만 그중에는 한국책이 100여 권 있다. 한국의 정치 경제 문화를 다룬 책이 대부분이다. 무함마드 알가디 알아자하리대 도서관장은 “우리 학교에서 한국책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은 아마 함자 교수 한 명뿐일 것”이라며 “양국 간 가교 역할을 하는 중요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하르툼=남윤서 기자 baron@donga.com
▼한국어 교육 강화
인재양성 요람으로▼
■ 함자 교수 재직 알아자하리大
압델랄 함자 씨가 2005년 경희대에서 행정학 박사학위를 받을 당시 지도교수인 한상연 행정학과 교수와 찍은 사진. 함자 씨는 “한 교수는 지금까지도 가장 기억에 남는 고마운 분”이라고 말했다. 사진 제공 압델랄 함자 씨
한 교수에게도 함자 씨는 기억에 남는 제자다. 늘 웃는 얼굴에 한국인들과도 잘 어울리고 예의도 바른 학생이 함자 씨였다. 한 교수는 “무슬림이라 고기와 술을 먹지 않는데도 대학원 회식자리에 빠지지 않고 참석해 분위기를 돋웠던 학생”이라고 함자 씨를 기억했다. 한 교수는 “함자 씨는 한국말에 능숙했지만 글쓰기는 어려워했다. 그래도 워낙 열심히 하는 학생이었기 때문에 조금만 도와주면 좋은 글을 써냈다”고 말했다. 그는 함자 씨의 소식을 듣고는 “한국과 수단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하는 것 같아 뿌듯하다”고 말했다.
알아자하리대에서 함자 씨는 ‘변화의 시대에 필요한 인재’로 평가받는다. 하산 모하메드 아메드 알아자하리대 부총장은 “경제 성장을 이룩한 한국이 가진 교육, 기술 영역의 경험이 우리에게도 필요하다”며 “한국을 잘 아는 함자 교수가 우리 대학에 있다는 것은 행운”이라고 말했다.
아메드 부총장은 “수단 교육에서 가장 시급한 것은 교육 환경을 개선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최근 새 용지로 대학을 이주시킬 계획을 세우는 데 주력하고 있다. 완벽한 컴퓨터 통신 환경과 첨단 강의 시설을 갖춘 대학을 만드는 게 목표다. 또 해외 대학과의 연계를 강화하겠다는 목표도 세웠다. 그는 “선진 대학의 노하우를 알기 위해서는 해외 대학을 잘 아는 인재가 필요하다. 한국어 등 외국어 교육을 강화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며 “해외에서 공부할 기회를 확대해 함자 교수 같은 인재가 많아지도록 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