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사교육만 줄이면 우리나라의 교육이 제대로 설까. 필자가 보기에는 대단히 회의적이다. 왜냐하면 사교육을 줄인 후에 공교육을 통해 학생들을 어떻게 교육시키겠다는 철학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지금까지 사교육을 줄인 대표적 성공사례로 나오는 것을 보면 방과 후에 학생들을 학교에 잡아두는 것이 대부분이다. 물론 이렇게 학교에서 방과후 수업을 하면 가정형편이 어려워 학원 과외를 못하는 학생들에게 기회를 제공하는 장점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학생들이 ‘입시준비’에 얽매이는 일은 변하지 않는다. EBS 수능 강의도 마찬가지다. 사교육에서 하는 일을 공영방송을 통해 싼값에 공급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만일 정부의 정책이 성공해서 의도대로 사교육이 줄어든다고 해도(물론 이것도 확실하지 않지만) 그 후의 공교육에 대한 청사진이 보이지 않으니 답답하다.
공교육, 철학과 고민이 안 보인다
물론 인문계 중고등학교가 대학 진학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기에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의 다양한 특성을 살리는 교육을 할 수 있으려면 대학들이 입시에서 그러한 학생들을 뽑아야 한다. 수능이나 내신 성적이라는 단순한 잣대보다 입학사정관제 등을 통해 학생들의 다양한 능력을 좀 더 살펴보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사실 21세기 지식기반사회를 이끌어 갈 인재는 창의성을 가진 사람인데, 이런 학생을 유인하기 위해서라도 앞으로 대학들은 더 다양한 잣대를 사용할 수밖에 없다. 그래야 대학들도 앞으로 벌어질 국내외의 치열한 경쟁 구도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수능이나 내신의 숨 막히는 점수 경쟁은 학생들의 창의력을 말살하는 주범이다. 예컨대 수학과 과학 학력을 국제적으로 비교 평가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학업성취도 국제비교연구(PISA)에서 우리나라 학생들의 평균 점수는 상위권에 포진하고 있지만, 학생들이 수학이나 과학을 좋아하는 정도는 밑에서 몇 번째일 정도로 바닥이다. 공자는 “아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을 이기지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을 이기지 못한다”라고 했다. 이처럼 주입식으로 수학과 과학을 가르쳐서 학생들의 흥미를 말살하니 좋은 수학자나 과학자가 나오기 어려운 것이다. 수학이나 과학뿐 아니라 아마도 거의 모든 과목에서 비슷한 일이 벌어지는 것으로 짐작된다.
대학도 다양한 잣대로 선발해야
이제 사교육을 줄이기만 하면 한국의 모든 교육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미망은 깨자. 물론 사교육 문제가 우리나라 교육문제의 가장 큰 현안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사교육을 잡는 데에만 온힘을 쓰면서 막상 ‘어떤’ 공교육을 해야 학교가 제대로 서고 학생들의 잠재 능력을 충분히 끌어낼 수 있을지를 잊어서는 안 된다. 이제 정부와 교사, 그리고 중고교와 대학이 모두 힘을 합쳐 ‘어떤’ 공교육을 해야 할지 고민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