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저씨 말대로 신분의 사다리를 한 칸이라도 올라가고 싶었어요. 그런데 제가 그 사다리를 죽기 살기로 올라가면 또 다른 누군가가 그 밑에 있겠죠. 결국 못 올라간 사람의 변명이지만.” MBC 시트콤 ‘지붕 뚫고 하이킥’의 주인공 세경은 마지막 회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 세경이 검정고시를 포기하고 이민을 가기로 결정한 이유 중 하나였다. 이 장면을 보면서 김예슬 학우의 대자보를 떠올렸다.
10일 고려대 후문에 붙은 김예슬 학우의 대자보는 끝없는 경쟁으로 점철된 대한민국 사회와 제 기능을 잃어버린 대학을 꼬집었다. 고려대 경영학과 3학년. 조금만 더 노력하면 신분의 저 꼭대기에 도달할 수 있을 자리였다. 하지만 그는 신분의 사다리를 걷어차겠다고 했다. 다시 ‘지붕킥’을 돌아본다. 스무 살의 가사도우미 여자애가 검정고시를 보지 않겠다고 결정한다. 이 결정에 귀 기울이는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될까.
본인의 말마따나 ‘김예슬’이라는 작은 돌멩이 하나가 빠졌어도 대학이란 거대한 석탑과 사회의 질서는 끄떡없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열람실 안은 후끈거린다. 경쟁의 열기는 가장 먼저 냄새로 다가온다. 열람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숨이 턱 막힌다.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은 사람들의 체취다.
김예슬 학우는 명문대라는 관문을 통과했지만 그 앞에는 취업이라는 또 다른 관문이 있었다며 이제야 이 사회의 경쟁은 끝이 없음을 알아차렸다고 털어놓았다.
김예슬 학우는 인터뷰를 거절하고 있다고 들었다. 그가 조금만 더 적극적으로 나서 준다면 좋겠다. ‘지붕킥’ 세경의 진심 어린 고백이 지훈의 자각을 불러일으켰듯이 자신이 만들어 낸 작은 균열을 조금씩 더 확대하고 우리들을 자각시켜 준다면 좋겠다. 이 숨 막히는 사회와 열람실의 공기에 최적화 모드로 적응하는 법을 익히는 게 아니라 이 공기를 어떻게 하면 깨끗하게 바꿀지를 고민하게 만드는 새로운 자각이 필요하다.
이진주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4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