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 스님은 조계종단의 고위 직책은커녕 그 흔한 주지 자리 하나 차지하지 않았지만 불교계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큰어른’이다. 평생 무소유(無所有)로 살았으면서도 그 누구보다 이 세상에 많은 유산을 남겼다.
어제 열반의 세계로 든 법정 스님은 “무엇인가를 갖는다는 것은 다른 한편으로 무엇인가에 얽매이는 것”이라며 “작은 것과 적은 것으로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고 설법했다. 몸소 농사지은 채소 하나라도 이웃과 나눠 먹고, 책 인세(印稅)가 생기면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줬다. 스님은 자신이 죽더라도 사리를 수습하지 말 것과 수의 대신 평소 입던 승복 차림 그대로 화장할 것을 유언으로 남겼다. 생의 마지막 길을 떠나면서까지 무소유를 실천한 것이다. 그가 말하는 무소유는 아무것도 갖지 말라는 게 아니라 탐욕(貪慾)을 버리라는 가르침이다.
스님은 송광사 뒤편 불일암에서 17년, 전깃불조차 들어오지 않는 강원도 산골에서 또 17년을 기거할 정도로 속세를 멀리했지만 사바세계의 대중과는 끊임없이 교감했다. 서울 성북동 길상사에서 매년 봄과 가을 대중 법회를 열었다. ‘무소유’ ‘버리고 떠나기’ ‘일기일회’ ‘아름다운 마무리’ 등 수십 권의 산문집과 법문집, 번역서를 펴냈다. 1993년 4월부터 5년 7개월간 동아일보에 매월 1회씩 ‘산에는 꽃이 피네’라는 산문을 연재했다. 글을 쓰고 대중을 상대로 법회를 여는 것이 곧 수행이었다. 요란스럽지 않으면서도 내실 있게 불교의 가르침을 전파하고 불교의 대중화에 기여한 진정한 불자였다.
법정 스님은 “아름다운 마무리는 채움만을 위해 달려온 생각을 버리고 비움에 다가가는 것이고, 그때그때 바로 그 자리에서 나 자신이 해야 할 도리와 의무, 책임을 다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스님은 비록 우리 곁을 떠났지만 그가 남긴 정신은 중생에게 늘 사색의 화두(話頭)를 제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