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PU 9만개, 1초에 682조9000억 회 계산
충북 청원군 오창읍 국가기상슈퍼컴퓨터센터에서 직원들이 컴퓨터의 가동 상태를 점검하고 있다. 왼쪽에 보이는 외국인은 슈퍼컴퓨터 제조사인 미국 크레이사 관계자. 청원=김용석 기자
KBS 2TV 개그콘서트에서 ‘동혁이 형’이라는 캐릭터로 등장한 개그맨 장동혁이 기상청을 향해 독설을 날렸다. 전 국민이 웃었다. 딱 1291명만 빼고. 바로 기상청 직원들이다.
슈퍼컴퓨터가 뭐기에 도마에 올랐을까. 3일 충북 청원군 오창읍에 새로 지은 국가기상슈퍼컴퓨터센터(가칭)를 찾아가 슈퍼컴퓨터 3호기를 취재했다.
○ 자연에 도전하는 슈퍼컴퓨터
슈퍼컴퓨터의 계산능력은 대단하다. 보통 PC에 한두 개 탑재된 중앙처리장치(CPU)가 이 컴퓨터에는 9만 개나 있다. 계산 성능은 682.9테라플롭스. 1초에 682조9000억 회의 계산을 한다는 의미다. 사람으로 치면 5억5400명이 1년간 끙끙대면서 해야 할 분량의 계산이다. 이렇게 엄청난 계산능력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일기예보의 생산공정을 들여다보자. 예보를 하려면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이 관측정보다. 전 세계에서 위성, 비행기, 레이더, 선박, 지상관측소 등을 통해 생산하는 기상정보는 어마어마하다. 각 나라는 이 정보를 하루 2∼4차례씩 정시에 교환한다. 이제 슈퍼컴퓨터가 등장할 차례다. 컴퓨터는 측정정보를 운동방정식, 열역학방정식, 습기방정식, 상태방정식 등에 넣어 온도와 기압, 구름의 변동을 빠르게 계산해 낸다. 예보관들은 이렇게 계산한 결과물을 가지고 자신의 경험과 주관을 반영해 일기예보를 완성한다.
온도-기압-구름 이동 등 자연현상
세계 각국서 받아 수식으로 풀어내
독자 수치예보모델 없이 빌려써
예보 정확도 선진국의 72%수준
○ 수치모델 개선이 숙제
여기서 질문 하나. 슈퍼컴퓨터가 좋아진다고 일기예보의 정확성이 높아질까. 정답은 ‘절반만 그렇다’이다. 최신 PC로 바꿨다고 해도 소프트웨어가 20년 전 MS-DOS만 깔려 있다면 업무효율성은 올라가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슈퍼컴퓨터를 도입해도 그 안에서 돌아가는 소프트웨어인 수치예보모델이 개선되지 않으면 효과를 보기 어렵다.
수치예보모델은 기온, 습도, 바람과 같은 기상요소의 시간변화와 날씨현상을 물리방정식으로 표현해 모델화한 수식을 말한다. 이 모델이 얼마나 기상환경에 맞게 짜여졌는지, 지금까지의 통계를 잘 반영하고 있는지에 따라 예보의 정확도가 달라진다.
안타깝게도 한국의 수치예보모델은 선진국에 비해 뒤떨어진다. 정확도가 유럽(ECMWF), 영국, 일본, 미국, 중국 등에 뒤진 세계 9위에 그친다. 선진국의 72% 수준이다. 한국 지형에 맞는 독자적인 모델도 없다. 지금까지 일본 모델을 들여와 쓰다가 올해 5월부터 영국 것으로 교체하는 등 내 집 없이 셋방살이를 전전한다. 유희동 기상청 수치모델개발 과장은 “자체 수치예보모델을 만드는 데 수백억 원을 투입해야 하기 때문에 엄두를 못 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런 변명에 전문가들의 시선은 곱지만은 않다. 한 전문가는 “기상청이 지금까지 수치예보모델 개발 등 기초적인 역량을 키우는 것보다는 동네예보 등 새로운 서비스를 내놓아 국민의 시선을 모으는 데만 신경을 써서 생긴 문제”라고 지적했다.
청원=김용석 기자 nex@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