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제공 뿔
소설가 오현종 씨는 최근 발표한 장편소설 ‘거룩한 속물들’(뿔)에서 속물이 되기를 자처하고, 또 그렇게 되기를 권하는 우리 사회의 풍속도를 세밀하고 흡인력 있게 그려낸다. 24일 전화 인터뷰에서 그는 집필동기에 대해 “현진건의 단편 중에 ‘술 권하는 사회’란 것이 있었지만 요즘은 ‘속물 권하는 사회’인 것 같다”며 “작가로서 이 사회의 속물성에 대해 고민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소설은 여대 사회복지학과에 다니는 여대생 기린과 그의 가족들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사업 실패 뒤 대리운전 기사로 근근이 살면서도 이른바 ‘SKY’ 대학을 졸업한 아버지는 자신을 곧 죽어도 ‘중산층’이라고 믿는다. 전공과는 달리 사회 복지에 큰 관심이 없는 기린은 돈 많은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기 위해 과외를 몇 탕이나 뛰면서도 ‘빈티’만은 내지 않으려 안간힘을 쓴다. 하지만 친구들이 그런 자신을 몰래 비웃고 있는 것은 알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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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소설이 이처럼 속물근성이 만연한 현실만 질책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사회 환경과 삶의 애환을 함께 가늠하게끔 한다. 작가는 “정답은 없겠지만 미디어에 의해 주입된 욕망, 가치가 아니라 스스로의 욕망과 꿈을 따라가는 것만이 대안을 찾는 방법이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주인공인 기린 역시 종국에는 이런 가능성을 탐색하면서 한 단계 성장해 간다.
소설의 제목은 김수영 시인의 산문 ‘이 거룩한 속물들’에서 따왔다. 속물성을 마치 종교처럼 떠받드는 자본주의 사회의 병폐를 날카롭게 꼬집는 것 같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완벽한 속물’조차 될 수 없는 보통 사람들에 대한 연민이 느껴지기도 하는 제목이다. 작가의 말처럼, “대부분의 우리들은 회의하고 고통받고 외로워하는 어설픈 속물들”임을 깨닫게 된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