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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함께 출근해요/1부]일터를 떠나는 엄마들

입력 | 2010-01-27 03:00:00

“아이 있다고 출장 배제… 야근자원하며 버텼지만 끝내 사표”
■ 아나운서 포기해야 했던 오영실 씨 스토리




등 떠밀진 않았지만
보모에 맡겨보니 불안하고
친정엄마가 도와줘도 한계
아이걱정에 그만둘 수밖에

버텨보려 애썼지만
밤에 일하고 낮에 아이돌봐
수면부족에 자기계발 못해
내게도 찾아오고 만 우울증

다시 일을 가졌지만
대부분 경력단절로 좌절감
탤런트로 안착 그나마 다행
직장보육시설 필요성 절감

방송인 오영실 씨는 육아 부담 때문에 오랜 고민 끝에 아나운서를 관둬야 했다. 26일 오후 오 씨가 경기 고양시에 있는 드라마 녹화 현장에서 대본을 읽고 있다. 아래 작은 사진은 2000년 오 씨가 여성동아와의 인터뷰 당시 두 아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장면. 김미옥 기자·동아일보 자료 사진

회사가 나가라고 등을 떠밀지는 않았다. 아이들이 너무 소중했기에 꿈에도 그리던 일을 얻었지만 사표를 낼 수밖에 없었다. 대한민국의 많은 직장여성들이 그랬듯이….

지난해 드라마 ‘아내의 유혹’에서 푼수 끼 많은 정하늘 역으로 큰 인기를 얻은 방송인 오영실 씨(45). 그는 30일부터 방송되는 주말드라마 ‘민들레 가족’에서 괄괄한 재경 역을 맡았다. 이제 배우로서 어느 정도 안착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마냥 당차고 밝은 사람인 줄 알았는데 의외로 다른 구석이 있었다. 18년 전의 이야기를 꺼내자 잠시 오 씨의 목이 잠겼다. 육아에 얽힌 아픈 추억이 있었다.

1987년 오 씨는 그토록 바라던 아나운서가 됐다. ‘TV유치원 하나둘셋’에서 8대 하나 언니로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이어 가요순위 간판 프로그램이었던 ‘가요톱10’과 ‘가족오락관’의 진행을 맡으면서 ‘아나운서 오영실’은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이 모든 게 아이를 낳으면서 헝클어지기 시작했다.

“1991년 큰아들 혁수가 태어났고, 두 달의 출산휴가를 마치고 회사에 복귀했어요. 그 후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들이 벌어졌죠. 내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벅찼어요.”

일을 계속 해야겠기에 아이를 보모에게 맡겼다. 보모 아주머니는 깔끔한 이미지였다.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러나 평소보다 일찍 퇴근한 어느 날, 오 씨는 집밖으로 흘러나오는 고함소리를 들었다. “저리 가, 왜 보채. 뭘 잘했다고.” 돌도 안 된 아이에게 물건을 집어던지는 소리까지 들렸다. 너무 놀라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날로 보모를 내보내고, 짐을 싸서 친정집으로 들어갔다. 처음에는 조카가 예쁘다던 오 씨의 여동생도 점점 힘들어했고, 고혈압을 앓고 있는 친정 엄마도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아이를 직접 키우리라 마음먹었다. 밤 근무를 자처했다. 오후 5시 출근해 다음 날 오전 1시에 퇴근했다. 밤에는 일하고 낮에는 아이들을 직접 돌봤다. 그러나 혼자 힘으로는 벅찼다. 사설 어린이집을 찾았다. 아이는 잘 적응을 하지 못했는지 점점 말라갔다.

직장보육시설이 간절해졌다. 마침 그런 논의가 일기 시작했다. 그러나 시설이 만들어져도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만 운영한다고 했다. 아나운서의 업무 특성을 반영하지 않은 것이다. 기대는 산산조각이 났다.

그래도 억척스럽게 아이를 키우는 것까지는 감당할 수 있었다. 전문 직종이지만 아줌마라는 ‘낙인’이 의외로 크다는 게 그를 힘들게 했다. 오 씨는 화려한 스타나 젊은 사람들과 어울리는 프로그램을 맡고 싶었다. 그러나 아이를 낳은 후에는 아줌마를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밖에 맡지 못했다. 해외 출장이 있는 프로그램은 아예 처음부터 배제됐다. 아이를 봐야 하는데 어떻게 해외에 나갈 수 있느냐는 것이다. 분노는 커져 갔지만 속으로 삭여야 했다.

 

3년 터울로 둘째 종수가 태어났다. 오 씨의 직장생활은 더 빡빡해졌다. 어린이집에 대한 믿음이 가지 않아 중국동포 출신 보모를 고용했다. 어렵게 번 월급을 고스란히 보모에게 주면 남는 게 뭐 있냐는 농담은 그래도 들을 만했다. 그러나 주변 사람들이 “아줌마는 집에서 아이를 돌보는 게 돈을 절약하는 것”이라고 수군댈 때면 피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직장 10년 차가 되던 1997년 오 씨는 결국 회사에 사표를 냈다.

“어느 날 아이가 난간에 발이 빠져 죽는 꿈을 꿨어요. 너무 생생했어요. 좋은 아나운서가 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이들을 내 손으로 키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렵게 내린 결정이었지만 그때는 크게 후회하지 않았어요. 일을 그만둔 다음에야 내가 얼마나 일을 사랑하고 있었는지 깨달았죠.”

일을 하고 싶은 욕망이 강하게 꿈틀댔지만 여전히 아이들이 맘에 걸렸다. 일도 하고, 육아도 잘할 수 있도록 프리랜서 활동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뭔가 부족한 듯한 느낌이었다. 그 후 남편을 따라 미국으로 건너가서는 엄마 역할만 했다.

오 씨는 2005년 귀국한 뒤 다시 일을 시작했다. 한때는 반찬가게를 열기도 했지만 재미를 보지는 못했다. 결국 다시 방송국으로 향했다. 다행히 재기하는 데 어느 정도 성공했다. 그러나 이제는 아나운서가 아니라 방송인이란 타이틀이 붙는다. 마음고생도 심했다. 연기자로 주목을 받기 전까지는 우울증으로 고생하기도 했다.

운이 정말 좋은 사람이라고 오 씨는 스스로를 평가한다. 방송 일을 한 경력 때문에 일을 그만둔 뒤에도 재기할 수 있었지, 대부분의 직장여성은 육아로 일을 그만두면 재취업이 상당히 힘들다는 것이다.

“대가족이 참 좋았던 것 같아요. 육아를 조금씩 나눌 수 있었으니까요. 핵가족 사회인 지금, 슈퍼우먼이란 세상에 원래 없다는 걸 정부도 기업도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엄마보다 더 엄마 같은, 깐깐하고 믿음직한 보육시설만 있다면, 저출산 문제도 해결되지 않을까요?”

특별취재팀

▽ 팀장 김상훈 교육복지부 차장
▽ 교육복지부 우경임 기자 노지현 기자
▽ 사회부 이진구 기자 이미지 기자
▽ 산업부 정효진 기자
▽ 오피니언팀 곽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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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점 엄마 될까봐 아이 갖기 두렵다”
“자녀 꼭 필요하다”는 여성
4년전 42%서 24%로 ‘뚝’▼


 


결혼 4년차 주부 이정연 씨(가명·32)는 아이가 없다. 불임부부라서 그런 게 아니다. 사회를 믿지 못하기 때문에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이다. 이 씨는 “나와 남편이 누리고 있는 생활수준을 내 아이들이 누릴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없다”며 “아이를 키우는 환경이 좋아지지 않는다면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생각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고 말했다.

조윤주 씨(36·여)는 최근 근무여건과 연봉이 더 나은 회사로 옮기려고 면접시험을 봤다. 면접관이 물었다. “애가 아픈데, 오후에 중요한 바이어를 만나는 스케줄이 있습니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조 씨는 즉각 대답을 하지 못했다.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가는 게 당연했지만 바이어를 만나겠다는 대답을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러나 양심상 그렇게 답하지는 못했다. 보건복지가족부가 지난해 전국 1만211개 표본가구의 20∼44세 기혼여성 3585명과 미혼남녀 3314명을 대상으로 ‘2009 결혼 및 출산동향 조사’를 했다. 해가 갈수록 점점 아이를 적게 낳거나 낳지 않으려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었다. 2005년만 해도 ‘자녀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의견이 남자는 54.4%, 여자는 42.1%였다. 그러나 2009년에는 이 비율이 각각 24.3%와 24.0%로 뚝 떨어졌다.

조사에 나타난 대로 직장여성들은 엄마라는 자리가 부담스럽다. 출판사 경력이 10년째인 설연주 씨(36)도 아이를 둘 낳고 싶었지만 하나로 끝내야 했다. 설 씨 부부에게는 여섯 살배기 아들이 있다. 설 씨는 4년 전 현재의 회사로 옮겼고, 바로 임신을 하면 찍힐 것 같은 분위기가 팽배했다.

지난해 통계청이 15세 이상 가구원 3만7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보면 여성 취업에 육아 부담이 큰 장애물인 것으로 나타났다. ‘육아 부담이 취업에 장애요인’이라고 답한 사람은 47.6%로 2006년 45.9%, 2002년 38.8%에 비해 크게 늘어났다. 반면 ‘사회적 편견과 관행’을 꼽은 비율은 20% 정도였다. ‘불평등한 근로여건’은 10.7%로 2006년 11.6%보다 오히려 줄어들었다. 조주은 국회 보건복지여성팀 입법조사관은 “일과 가정이 동시에 성립되지 않는 직장 분위기에 실망해 퇴직한 여성이 2006년 14%에서 2008년 16.4%로 늘어났다”고 지적했다.

노지현 기자 isityou@donga.com

김유나 인턴기자 숙명여대 언론정보학부 3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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