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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곡의 땅 아이티]“굶주린 주민들 미쳐가고 있다”

입력 | 2010-01-18 03:00:00

구호품 차지하려 난투극

[부상자 치료 역부족]
팔다리 으스러져 병원와도 사흘 되도록 의사 못만나
부목 대신 종이박스로 묶어

[배고픔 한계상황]
식량배급 수요 감당못해 생필품 찾아 곳곳 장사진
외국기업 앞에도 모여들어




“눈 뜨고 못볼 참상에 말문 막혀”

뉴욕 특파원인 저는 아이티의 지진 소식을 듣고 바로 다음 날인 13일 아이티 수도 포르토프랭스행 항공편을 알아보았으나 모든 항공편이 취소된 상태였습니다. 궁리 끝에 이날 오후 7시 뉴욕발 도미니카공화국 산토도밍고행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14일 오전 9시 유엔 수송기를 이용해 포르토프랭스로 들어가려고 했지만 불가능했습니다. 결국 육로를 택하기로 하고 15일 오전 7시 산토도밍고에서 버스에 올라 13시간 반 만인 오후 8시 반(한국 시간 16일 오전 9시 반) 한국 언론으로는 첫 팀으로 대참사의 현장 포르토프랭스에 도착했습니다. 돌아본 현장은 말문이 막히고 두 눈을 뜨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참담했습니다.》

○ 천막생활… 끼니도 제대로 못 때워

무너진 대통령궁 앞 잔디 광장에는 수백 명의 이재민이 천막을 치고 생활하고 있었다. 하루에 몇 차례씩 계속되는 여진으로 집에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들까지 합세하면서 천막촌은 점점 커지고 있다. 이곳에서 만난 션기요 마다 씨(여)는 “여동생 내외가 이번 지진 때 죽으면서 고아가 된 조카 2명까지 합쳐 세 가족이 모여 살고 있다”며 “지진이 난 당일에 이곳에 나온 이후 끼니를 제대로 때우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손에 약간의 돈을 쥐고 있는 사람들도 폭등하는 물가에 괴로워하고 있다. 손바닥만 한 비닐봉지에 담긴 식수 한 봉지는 1구르드(약 30원)에서 2구르드로 앙등했고, 주로 빈곤층이 식사대용으로 먹는 흙으로 만든 과자는 5개 5구르드에서 3개 5구르드로 올랐다.

도시를 탈출하는 사람들의 행렬도 이어지고 있다. 돈을 벌기 위해 포르토프랭스로 왔던 사람들이 고향으로 되돌아가고 있다.

○ 의료서비스 부족으로 생명 위협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부상자들도 제때 수술과 치료를 받지 못해 생명을 잃을 위험에 처했다. CNN은 16일 “임시병원에 도착한 환자 가운데 3분의 1은 즉시 수술을 받지 못하면 결국 죽게 될 것”이라고 의료전문가들이 경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포르토프랭스 공항에 설치된 유엔 임시병원에서 300여 명의 환자를 돌보고 있는 하버드대 의대의 제니퍼 퓨린 박사는 16일 “약 30%의 환자들은 24시간 내 수술을 받아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사망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의료진들은 임시방편으로 통증을 줄이는 모르핀 주사를 놓고 있으나 환자들의 신음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고 CNN은 전했다.

시테솔레유에 위치한 한 병원에서 만난 예술라 씨(21·여)는 집이 무너져 내리면서 팔과 다리가 으스러져 병원을 찾았지만 아직까지 진료를 받지 못하고 있다. 응급환자가 많고 의사가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이다. 예술라 씨는 비틀어진 다리에 종이박스로 부목을 만들어서 대고 있었다. 그는 “지진 당일 병원에 왔는데 사흘째 의사를 만나지 못하고 있다”며 울먹였다. 이 병원에는 예술라 씨와 같은 골절 등 부상자 수백 명이 병원 앞마당 텐트에서 진료를 기다리고 있었다.

○ 이재민에게 닿지 않는 구호물자

시간이 지나면서 수도 포르토프랭스에 구호물자가 전달되고 있으나 극심한 물, 식량 부족 사태는 해소되지 않고 있다. 아이티 정부는 식량배급소 14곳을 설치해 구호물자를 배급하기 시작했으며 시내 5곳에 응급실을 열었다. 세계식량계획(WFP)은 빈민가인 시테솔레유에서 트럭 6대분의 고열량 비스켓을 수천 명의 주민들에게 나눠줬다.

하지만 피해 주민 수에 비해 구호물자가 크게 부족해 이를 서로 차지하기 위해 폭력까지 등장하는 등 대혼란이 일어나고 있다. 공중에 낮게 뜬 채로 구호물자가 든 상자를 내려놓는 미군 헬기 아래에는 주민들이 서로 쟁탈전을 벌였다. 미군 헬기 아래에 서 있던 회계사 앙리 운슈 씨는 “사람들이 굶주린 나머지 미쳐가고 있다”고 탄식했다.

도미니카공화국에서 지원물품을 싣고 아이티에 도착한 한 구호팀은 주민들에게 배포할 경우 폭동이 일어날 것을 우려해 멈추지 않고 포르토프랭스 내 유엔기지로 방향을 돌리기도 했다.

구호물품 보관소 앞에는 음식 등을 받으려는 사람들이 장사진을 치고 있다. 한국 등 외국 업체들이 입주해 있는 소나피공단 입구에도 음식과 생필품을 얻으려는 현지인들이 입구에 진을 치고 있다.

지진 발생 이후 포르토프랭스에 들어온 도미니카공화국 주재 한국대사관의 최원석 참사관은 “앞으로도 구호품 보급이 원활할 가능성이 많지 않아 이재민의 분노가 폭발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고 말했다.

포르토프랭스(아이티)=신치영 특파원 higgle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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