홋카이도 히가시카와 “지역역사 진실 밝히자” 한국 찾아 생존자 면담
히가시카와에는 1940년대 초반 수력발전소인 에오로시(江사) 발전소와 수온 상승을 위한 유수지(遊水池) 3곳이 들어섰다. 발전소는 태평양전쟁 뒤 해체돼 다른 자리에 복원됐지만 유수지는 지금도 마을 주변의 기온을 온화하게 만들어 농사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당시 이 발전소와 유수지 건설에 동원된 인력은 총 2200여 명. 일제강점하 강제동원 피해진상규명위원회는 “이들 중 한국에서 강제로 끌려온 징용자가 1800명이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일본 중앙정부도 아닌 작은 지자체가 자발적으로 강제 징용자 조사에 나서기까지는 한 시민의 ‘작지만 강한’ 목소리가 큰 역할을 했다. 이 지역 변호사인 곤도 노부오(近藤伸生·54) 씨는 2008년 지역 역사를 조사하던 중 조선인과 중국인 강제 징용자들이 지역 발전소와 유수지 건설에 동원됐다는 사실을 처음 발견했다. 곤도 씨는 “나이 든 동네 노인들을 찾아다니며 조선인 강제 징용 현황을 물었지만, 한결같이 ‘나는 모르지만 다른 사람은 알 것’이라며 언급을 피했다”며 “그럴수록 진실을 밝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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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 고파서, 혹은 다른 사람을 보낼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일본에 갔다는 할아버지들의 증언을 7월 마을 정청(町廳)에서 보고했. 그제야 관청도 협력하기 시작하더군요.”
한국인 강제징용자 1200여 명을 동원해 완공한 것으로 추정되는 히가시카와 유수지 전경. 사진 제공 일제강점하강제동원피해진상규명위원회
시민들의 자발적인 운동이 알려지면서 마쓰오카 이치로(松岡市郞) 히가시카와 정장은 “마을 발전에 결정적 계기가 된 유수지 건설자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고 싶다”며 지난해 7월 지역 강제 징용자 찾기에 동참했다. 석 달 뒤인 10월에는 담당 직원과 의회의원 5명이 부산과 경남 하동의 징용 생존자 4명을 만나 징용 당시의 상황을 조사했다.
마쓰오카 정장은 12일 동아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역사를 정확히 기록하는 것은 지방자치단체의 사명”이라며 “향후 발간되는 마을 역사 기록인 정사(町史)에 정확한 사실을 기록하기 위해 조선인 징용 사실을 반드시 조사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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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카와 측은 최근 조선인 강제 징용자를 위한 위령비 건립도 검토하고 있다.
지역 공사에 동원된 강제 징용자의 대부분은 조선인이었지만 유수지와 발전소 터에는 중국인 징용자 위령비만 있다.
곤도 씨는 2년째 징용자 조사활동을 하면서 한국어를 몰라 어려움이 많다고 판단해 지난해 11월부터 성균관대에서 한국어를 배우고 있다. 그는 “중국 정부는 중-일 국교수립 당시 일본에 강제 징용 사과 요구와 함께 위령비 건립을 요구했지만 한국 정부의 요구는 없었다”며 “일본에 있는 조선인 위령비는 대부분 민간단체가 세운 것으로 알고 있다”며 간접적으로 한국 정부의 무관심을 꼬집었다.
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