高大 서광석 교수, 빚내 세운 벤처 수익 20억 대학에 쾌척집 담보로 창업… 포장재 개발9년만에 年매출 300억 ‘쑥쑥’“이공계 후배들 힘냈으면…”
21일 경기 화성시 향남면 인스콘테크 공장에서 서광석 고려대 신소재공학부 교수(오른쪽)가 방진복을 입고 반도체, 전자기기 포장재와 LCD TV 형광등을 감싸는 필름 상태를 살펴보고 있다. 화성=박영대 기자
“후배들이 마음껏 실험할 공간을 만들어 주고 싶었을 뿐인데 학교에서 너무 과분한 대우를 해 주셔서 쑥스럽습니다.”
18일 서울 성북구 안암동 고려대 본관 앞에는 영화제 시상식에나 등장하는 ‘레드카펫’이 깔렸다. 5억 원 이상의 고액 기부자에게 최고의 예우를 표현하기 위한 레드카펫이 이날은 고려대 신소재공학부 서광석 교수(55)를 위해 깔렸다. 서 교수는 이날 고려대에 “이공계 학생들을 위한 측정장비와 설비 구입에 써 달라”며 자신이 대표이사로 있는 반도체·전자부품 전문업체인 인스콘테크㈜의 명의로 발전기금 20억 원을 기부키로 약정했다. 그동안 고려대 교수가 레드카펫 위에 선 적은 없었다.
서 교수가 낸 거액의 발전기금은 인스콘테크가 연매출 300억 원의 알짜 기업으로 성장했기에 가능했다. 고분자공학을 전공하고 모교 교수로 재직 중이던 서 교수가 그간의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반도체나 전자부품의 포장재 원재료를 개발하는 이 회사를 세운 것은 2000년이다.
하지만 시장의 반응은 차가웠다. 신제품의 효능을 설명해도 ‘그게 꼭 필요한가’ ‘이름 없는 회사가 만든 제품을 어떻게 믿느냐’는 반응이 많았다. 서 교수는 이때가 가장 힘들었다고 회상했다. 매출은 없는데 적자는 쌓여갔고 서 교수가 대학에서 받은 급여로 직원들의 상여금을 주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이때 돌파구가 돼 준 곳이 반도체 포장재를 만들어 대기업 등에 납품하는 업체였다. 서 교수가 개발한 원료로 제품을 만들어 본 이들 사이에서 “품질이 뛰어나다”는 입소문이 돌면서 2002년 세계 최고의 반도체 기업인 삼성전자가 고객이 됐고 첫 매출을 기록했다.
2005년 경쟁 업체들이 ‘카피(모방)’ 제품을 쏟아내기 시작하면서 매출이 잠시 주춤했지만 서 교수는 주력사업군을 다변화해 위기를 기회로 바꿨다. 액정표시장치(LCD) TV에 들어가는 형광등에 덧입히는 필름에 이 회사의 강점인 정전기가 일지 않게 하는 막을 코팅하는 기술을 개발한 것. 이 기술이 히트를 치면서 회사 매출은 2007년 120억 원, 2008년 210억 원, 2009년 300억 원으로 수직 상승했다. 현재 인스콘테크는 경기 안성과 화성에 2개의 공장과 80여 명의 임직원을 둔 기업으로 성장했다.
이 회사의 특징은 영업사원이 따로 없다는 것. 거래처에서 먼저 기술력을 인정하고 제품 개발이나 구매 의사를 밝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생산직을 우대하고, 외국인 노동자에게 국내 노동자와 동일 임금을 지급하는 것도 서 교수의 경영 철학이다.
우정열 기자 passi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