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 극복 과정에서 남은 가장 큰 자산은 자신감이다. 비록 우리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이고 한때 1인당 소득이 2만 달러를 넘었던 적이 있지만 이번 국제 금융위기 전까지는 선진국이라는 자부심을 갖기가 쉽지 않았다. 금융위기로 경제가 위축돼 시민의 생활이 더 어려워진 가운데에도 다른 경쟁국과 비교되는 좋은 경제성적을 내면서 한국 경제의 위상에 큰 변화를 느끼는 국민이 많아졌다. 이런 변화가 일본과 중국의 틈 사이에서, 어쩌면 샌드위치 신세가 고착화될지 모르는 중요한 상황에서 이뤄졌다는 데 더욱 큰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세계를 놀라게 한 자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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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2009년은 세계 각국으로부터 한국에 대해 본격적인 경계와 견제의 싹이 움트기 시작한 해로도 기억될 수 있다. 위기 속에서 진행된 경쟁 기업 간 치킨게임과 승자독식의 냉혹한 현실 속에서 상처받은 선진국 대기업이 구조조정으로 내몰리면서 상실한 시장을 우리가 차지한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작년 세계 수출시장에서 2.6%였던 점유율을 불과 1년 만에 3.0% 이상으로 끌어올려 세계 9위의 수출 국가로 발돋움한 원천은 이런 것인지 모른다. 선진국 기업이 기력을 차려 다시 움직인다. 군살을 빼서 몸집을 가볍게 만들고 이해관계가 맞는 기업이 국적에 상관없이 합종연횡하며 한국 기업을 향한 대반격을 준비한다.
몇 년 전 가전제품에 이어 올해는 한국의 자동차가 일본시장에서 버티지 못하고 철수한 반면, 도요타의 한국 시장 입성은 예상을 넘는 성공으로 평가받는다. 얼마 전에는 애플의 아이폰이 국내시장에 도도하게 상륙하여 선풍을 일으켰다. 올해의 성과에 도취하고 자만해서는 안 될, 경계할 일이 이미 도처에서 생겼다.
게다가 올해 꽤 큰 덕을 본 환율효과도 내년에는 기대할 정도가 아닐 듯하고 일본의 가격 공세와 중국의 품질 공세 등 새로운 전략을 갖고 과거와는 달라진 경쟁국을 세계 시장에서 다시 만날 것이다. 수출 등 대외부문 선전의 이면에는 빛을 바래게 하는 답답한 부문도 있다. 수출과 경상흑자가 고용이나 내수, 투자 쪽으로 성과가 이어지지 못한 점도 우리가 시급히 풀어야 할 숙제이다. 새로이 들려오는 경고음과 밀린 숙제를 풀지 못하면서 섣부른 축배를 들면 이는 어느 순간엔가 독배로 변할지 모른다. 그런 사례를 주변에서 너무나 많이 봤다.
금융위기라는 최악의 상황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지난 10여 년간 그토록 기다렸던 재도약의 기회를 엿볼 반전을 이뤄냈다. 2009년이 우리 경제에 남긴 역사적인 의미이다. 이제 곧 맞을 2010년대에는 이런 기회가 우리의 현실로 정착돼야 한다. 출발점인 2010년이 그래서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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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은 올해와 판이한 해가 될 것이다. 우리 경제가 앞이 보이지 않는 안갯속에서, 때로는 협곡 사이로 몸을 숨기면서 불확실한 상황을 헤쳐 나왔다면 내년에는 숨을 곳 하나 없이 탁 트인 들판에서 가진 실력을 그대로 드러내며 시장이라는 발 빠른 사슴을 경쟁자에 앞서 잡아야 하는 중원축록(中原逐鹿)의 한 해가 될 것이다. 사슴이라는 시장은 누군가에게는 먹이가 되겠지만 쫓기만 하고 잡지 못하는 자에게는 굶주림과 시장퇴출이라는 냉혹한 현실을 안길 것이다. 더욱 치열해질 2010년을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2009년이 우리에게 남긴 점을 제대로 반추해야 한다.
조환익 KOTRA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