宮 산 숲 돌 흙 길 담 물 꽃 뜰… 그리고 王을 품다골짜기 따라 형성된 연못 중심 4개 정원 만들어자연과 하나된 조경… 왕들의 ‘망중한’ 공간으로
창덕궁 후원의 부용지와 주합루 풍경. 후원은 독립적인 4개 정원으로 이루어졌으며 이들은 모두 물을 주제로 삼고 있다. 후원을 감상한다는 건 한눈에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정원들을 찾아가며 물을 만나고 자연과 하나가 되는 과정이다. 사진 제공 경기농림진흥재단
궁궐의 정원도 늘 뒤편에 자리했다. 창덕궁 뒤편, 산자락 속에 조성한 왕실의 정원을 그래서 ‘후원’이라고 불렀다. 궁궐에 속한 정원이라는 뜻에서 ‘궁원’, 일반인은 출입할 수 없는 곳이라 하여 ‘금원’이라고도 불렀다. 비밀의 정원이라는 다소 동화적 이름인 ‘비원’은 일제강점기에 널리 불러서 이제는 오히려 기피하는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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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후원은 궁궐에 부속되어, 논쟁과 격무로 가득한 궁궐에서 벗어나 잠시 휴식하며 긴장을 풀었던 정원이다. 중국의 왕실정원은 피서산장이나 이허위안(이和園)과 같이 궁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따로 조성한 별궁들이다. 여기에 황제가 행차하면 적어도 하루 이상을 지내야 한다. 비워둔 궁궐에 대한 걱정으로 제대로 쉬지 못하거나, 아예 정무를 잊어버리고 주지육림에 파묻힐 수밖에 없다. 그러나 궁에서 낮은 고개 하나 넘으면 펼쳐지는 후원은 일상 속에서 언제든지 찾을 수 있는 정원으로 ‘망중한’을 즐기기에 가장 적합한 위치와 크기를 가졌다. 일과 여가가 동전의 앞뒤를 이룸과 같이, 궁궐과 후원을 앞뒤에 조성하여 정무와 휴식을 일체화했다.
후원은 한순간에 이룩한 것이 아니라, 수백 년에 걸쳐 차근차근 조성한 역사적 정원이다. 조선 태종 때 터를 정하고, 세조 때 연못을 파고 땅을 넓혔으며, 광해군 때 여러 개의 정자를 지었다. 특히 인조는 남다른 정원 취미를 가져서 지금의 옥류천을 만드는 등 현재 후원의 뼈대를 조성했다. 정조는 세손 시절 규장각(지금의 주합루 일대)에 파묻혀 지내며 집권 후 이룰 대업을 준비했으며, 그 손자인 효명세자는 연경당과 기오헌을 짓고 강력한 왕권 회복을 꿈꾸다 제거되기도 했다. 지금의 후원은 조선조 500년 왕실의 역사를 고스란히 축적한 채, 곳곳에서 여러 왕의 풍류와 의지를 읽어 낼 수 있는 공간적 역사서이기도 하다.
인간의 계획은 한계가 있다. 아무리 천재적인 조경가나 건축가라도 자연의 섭리와 시간의 변화를 거스를 수 없다. 중국 정원의 달인인 계성이 오죽하면 “정원의 성공 여부는 조경가에게 3할, 주인의 안목과 정성에 7할이 달려 있다”고 했을까. 정원은 갖가지 화초가 피고 지고, 수목들이 자랐다 사라지는 변화무쌍한 곳이다. 그 거대한 시간의 흐름을 인간의 계획으로 정지시키려면 막대한 인력과 재력을 쏟아 부어야 한다. 프랑스의 베르사유 궁원은 350년 전 바로크 정원으로 태어나서 전혀 변하지 않은, 시간이 정지된 정원이다. 비록 세계에서 가장 화려하고 광대하다는 꼬리표를 달고는 있지만, 생태계를 거스르고 시간의 흐름을 정지시킨 반자연적이고 반역사적인 정원이다.
정원이란 이상적인 자연을 재현한 곳이다. 베르사유 궁원에서 루이 14세가 꿈꾸었던 자연이란 극히 기하학적이고 고정된 채 영원히 변하지 않는 자연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자연이 아니라, 거대한 역사 앞에서 한순간 허상에 지나지 않는 절대왕정의 과시요, 태양왕의 한 점 허영에 불과한 것이다. 자연은 항상 변화하면서 영원하고, 불규칙하면서 조화를 이룬다. 베르사유가 아니라 창덕궁의 후원에서 이러한 자연을 발견할 수 있다.
후원은 자연 지형을 철저하게 이용했다. 북한산의 맥이 흘러내려 한양의 제1봉인 북악을 이루고, 다시 동쪽으로 흘러 제2봉인 매봉을 이루었다. 그 매봉의 남쪽 능선에 후원과 창덕궁과 종묘를 앉혔다. 매봉 능선은 주름이 많아 후원에는 크고 작은 여러 골짜기가 있다. 이 가운데 4곳의 골짜기에 각각 특색 있는 정원을 만들었다. 부용지 일원, 애련지 일원, 반도지 일원, 옥류천 일원이 바로 그것이다. 이 4곳은 낮은 능선들로 감싸여서 서로 보이지 않는다. 다시 말하면, 후원은 독립적인 4개 정원으로 이루어졌으며, 후원을 감상한다는 것은 한눈에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숨겨진 이 정원들을 찾아 즐기는 체험이며 움직임이다. 아무리 지체 높은 왕족이라도 후원의 능선과 골짜기를 오르내리고 땀을 흘리고 가쁜 숨을 몰아쉬어야 한다. 후원은 바라보는 정원이 아니라 산책하고 소요하는 정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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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 맞추어 누각과 정자 따위의 부속 건물들도 크기가 점점 줄어들고, 규칙적이고 인위적인 모습에서 불규칙하고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변해간다. 따라서 궁에 가까울수록 공공적인 정원이며,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사적인 정원이 된다. 부용지 일원은 과거시험을 치를 정도로 개방된 곳이며, 애련지 일원은 허락된 신하들이 드나들 수 있는 반개방적인 장소, 반도지와 옥류천은 소수 왕족만이 즐길 수 있는 개인적인 정원이었던 것이다.
정원의 용도에 맞추어 조경을 계획했고, 자연 생태계의 변화까지 받아들여 최소의 인공만을 가해 최대의 효과를 거두었다. 최고의 성형수술이 자연산으로 보이는 것과 같이, 후원은 매우 완벽하여 너무나 자연스러운 정원이 되었다.
김봉렬 한국예술종합학교 건축과 교수
흥선대원군이 별장으로 사용했던 석파정. 동아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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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선-직선 어울리게
한국 전통 정원은 자연을 모방하거나 축소하는 방식이 아닌 자연 자체를 적극 도입하여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지 않으며 사계절이 뚜렷하여 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있다.
서울대 양병이 교수는 한국 정원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우리의 전통 정원은 공간의 구성이 수평적인 구분보다는 수직적인 공간 구분이 강하며, 특히 궁궐에서의 후원과 별정에서 잘 나타난다. 후원 양식은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발견되지 않는 우리나라 고유의 독특한 특징인데 후원에서는 돈대를 설치하여 좁은 공간에서 공간의 수직적 변화를 느끼도록 하였으며 또한 수목이나 석물을 이용하여 수직공간을 장식하고 있다.
또한 담장이 대부분 낮고 정원 내의 정자나 건물에서 주위 경관을 충분히 감상할 수 있도록 배치했다. 정원의 터를 잡을 때부터 주변 경관을 고려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물을 활용한 기법 또한 독특한데 물이 담겨 있는 연못의 형태가 중국이나 일본은 자연스러운 곡선을 취하고 있는 데 비해 한국은 직선형으로 되어 있으며 연못의 중앙에는 원형의 섬이 조성돼 음양오행의 원리를 그대로 상징화하고 있다.
한국 전통정원의 미와 풍취를 느낄 수 있는 곳은 서울 종로구의 석파정(石坡亭), 창덕궁의 후원, 강원 강릉시의 선교장(船橋莊), 전남 완도군 보길도의 부용동(芙蓉洞) 정원, 전남 담양군의 소쇄원(瀟灑園), 대전의 남간정사(南澗精舍), 경남 함안군의 무기연당(舞沂蓮塘), 경북 영양군의 서석지(瑞石池), 경북 경주시의 독락당(獨樂堂), 경북 봉화군의 청암정(靑巖亭), 경북 경주시의 안압지(雁鴨池) 등을 들 수 있다.
오강임 경기농림진흥재단 녹화사업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