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아낙네들이 빨래터에 모이 듯, 남자들의 ‘수다방’이었던 이발소가 사라지고 있다. 80년대까지 전국에 8만 5천여 점포였지만 올해는 1만여 곳 정도 밖에 남아있지 않다. 하얀 가운 차림의 이발사들이 뽐내는 숙련 된 면도 기술도 이제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서울 청파동 만리동시장 골목. 신축 건물들 사이에 금방이라도 쓰러질듯 초라한 건물이 돋보인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청홍백색의 이발관 표시등이 한눈에 들어온다. 지난 1927년에 이곳에 지어진 뒤 올해로 83년 동안 자리를 지켜온 ‘성우 이용원’이다. 마치 70년대 풍경을 재현해 놓은 영화세트장을 연상케 한다. 이곳은 일제강점기 때 초가집으로 지어졌다가 해방 후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남아있다.
5평 남짓한 이발소 내부는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는 것들이 한가득 이다. 내부 중앙에 위치한 연탄난로 위에는 커다란 양철통에 담긴 물이 끓고 있고 난로 연통을 고정시킨 얇은 철사 줄에는 뻣뻣한 수건들이 걸려 있다. 푹신한 이발의자 앞에는 뿌연 대형거울이 걸려있다. 거울 밑으로 바리캉이며 철 빗, 면도기 같은 이발기구가 가지런히 놓여있다. 한쪽 귀퉁이에는 요즘은 보기 힘들어진 면도칼을 가는 50년 된 낡은 말가죽 혁대가 걸려 있다. 이발소 안은 포마드 기름, 각종 염색약, 크림로션 냄새로 가득하다.
어릴 적 빨래판 위에 앉아 하얀 가운을 입은 이발사 아저씨의 포근함, 꾸벅꾸벅 졸다가도 차가운 비누 솔을 문지를 때면 정신이 번쩍 들던 기억. 우리 동네 이발소가 그리워진다.
신세기 동아닷컴 기자 shk919@donga.com
사라져 가는 것들…이발소, 이발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