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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도국 최고수준 감축… 가정-공공분야 ‘녹색 고통분담’ 불가피

입력 | 2009-11-18 03:00:00


혼잡통행료 확대 등 추진
가구당 年 21만7000원 부담
산업계 감축비중은 10%선
“한국은 야심찬 녹색국가”
외신들 일제히 높이 평가




“여기 합동참모본부인데요, 겨울철 적정 난방 온도가 얼마인가요.”

이명박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발표한 직후인 17일 오전 정부과천청사 지식경제부로 전화가 걸려왔다. 지경부 담당자는 ‘공공기관 에너지이용 합리화 추진지침’에 따라 난방설비 가동 때는 20도 이하, 냉방설비 가동 때는 26도 이상으로 실내온도를 유지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담당자는 “앞으로 이런 전화를 꽤 많이 받을 것 같다”고 말했다. 정부가 이날 발표한 온실가스 감축목표 때문이다.

정부는 2020년 온실가스 배출량을 기존 정책 유지 때 예상되는 배출전망치(BAU·Business As Usual)에 비해 30% 줄이기로 결정했다. 이 목표는 산업계는 물론이고 국민 개개인의 삶이 바뀌어야 달성이 가능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국민이 너나없이 조금씩 에너지를 아껴야 한다는 설명이다.

○ 경제 성장과 온실가스 배출량은 비례

부문별로 봤을 때 가장 에너지 소비가 많은 곳은 산업계다. 전체의 약 60%를 차지한다. 이어 수송 부문, 가정·상업 부문이 각각 20% 정도의 에너지를 소비한다. 하지만 2020년까지 줄여야 하는 온실가스 배출량 중 산업계가 부담해야 할 비중은 10%도 안 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미 효율이 높은 철강, 화학업계 등은 추가 감축 여지도 많지 않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연구원은 “국내총생산(GDP)과 에너지 사용량은 같이 증가한다”며 “GDP가 계속 성장하는 가운데 온실가스 감축이 계획대로 될지 상당히 회의적”이라고 말했다. 일본은 1970년대부터 2000년까지 국민소득이 2만 달러에서 4만 달러로 될 때까지 에너지 소비가 배로 늘었다. 앞으로 1인당 국민소득을 3만, 4만 달러로 늘리려는 한국에 시사하는 바가 큰 연구결과다.

이에 따라 온실가스 감축 정책을 주도한 녹색성장위원회는 그동안 계속해서 산업계의 부담을 최소화할 것이라고 주장해 왔다. 가장 타격이 클 산업계를 달래기 위한 것이었다.

이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저탄소 녹색성장은 소비와 교통생활에서 의식주 전반에 이르기까지 녹색생활, 녹색습관이 정착되어야 가능하다”며 “정부 기업 국민이 삼위일체가 되어줄 것”을 당부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 국민 부담 늘어날 듯

그렇다면 국민 부담은 얼마나 될까. 녹색위에 따르면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각 가구가 1년에 부담해야 할 액수는 21만7000원이다. 그러나 산업계가 부담할 10% 부분을 제외한 90% 이상을 수송과 가정, 공공 분야에서 줄여야 하기 때문에 이보다 더 많은 생활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전체 에너지 소비의 20%를 차지하는 수송 분야 중 70%는 개인 승용차이다. 이 때문에 일반인들이 차를 가지고 다니지 못하게 하는 정책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 이미 국토해양부는 혼잡통행료를 전국 주요 도시와 고속도로로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또 새로 짓는 건물은 단열 등으로 에너지 사용량을 줄일 수 있지만 지은 지 오래된 건물의 에너지 사용량을 줄이려면 더 많은 비용이 든다. 가구별 온실가스 배출 통계도 나와 있지 않아 통계 시스템부터 구축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 관계자는 “기존 주택의 에너지 절감 대책이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 눈치 보는 국제사회

다음 달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릴 제15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15)에서 기대했던 새로운 기후협약 의정서를 내놓지 못하게 됐다. 이에 따라 앞으로 국제사회에서 온실가스 감축이 어떤 방향으로 흐를지 모르는 상태다.

교토의정서에 따르면 주로 선진국인 의무감축국들은 2020년 온실가스 배출을 1990년 대비 25∼40% 줄이는 것을 권고하고 있지만 현재까지 감축목표를 발표한 선진국은 유럽연합(EU) 20∼30%, 호주 2∼22% 등 1990년 대비 평균 16∼23% 수준이다. 일본은 최근 ‘1990년 대비 25% 감축’을 선언했지만 ‘모든 선진국과 주요 개도국이 동참하는 경우’라는 전제조건을 달았다.

한편 외신들은 한국 정부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 발표를 일제히 전하며 높이 평가했다. 로이터통신은 “한국은 교토의정서에 따른 감축 목표를 설정할 의무가 없는 국가임에도 온실가스 감축 압박을 받아왔다”며 “한국은 이미 아시아에서 가장 야심 찬 녹색투자 국가”라고 평가했다. AP통신은 12월 덴마크 코펜하겐 기후변화회의에서 새로운 협약이 나올 가능성이 낮아진 가운데 나온 한국의 자발적 목표 설정은 선진국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온실가스 감축에 나서도록 압박하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김선우 기자 sublime@donga.com
한상준 기자 alwaysj@donga.com
성동기 기자 espr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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