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유럽파 태극전사들은 최근 약속이나 한 듯 동반 부진하며 허 감독의 속을 태우고 있다. 맨유의 ‘대형 엔진’ 박지성은 이날 라이벌 첼시와의 경기에 결장해 11경기 연속으로 경기에 나서지 못했다. 조원희(위건 애슬래틱)와 설기현(풀럼)은 올 시즌 정규리그 2차례 교체 출전에 그치며 주전 경쟁에서 밀린 모습이다.
꾸준히 선발 출전하며 활약하던 차두리(프라이부르크)도 최근 몇 경기에서 부진하더니 8일에는 정규리그 12경기 만에 교체 출전했다. 김동진 역시 지난달 뇌혈류 장애로 실신한 뒤 소속팀에서 4경기 연속 경기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이청용과 박주영이 활약하고 있지만 이청용은 팀 성적 부진으로, 박주영은 최근 거듭된 부상으로 아쉬움을 남긴다.
“조금 부진해도 큰물에서 노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허 감독은 이날 유럽파를 대거 대표팀 명단에 포함시킨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이미 검증된 선수들인 만큼 얼마나 뛰었느냐보다 경기에서 어떤 모습을 보이느냐가 중요하다는 것. 대표팀의 한 관계자도 “선수들의 과거 경력을 존중하는 감독님 스타일을 감안할 때 출전 기회가 적다고 당장 내치진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KBS 한준희 해설위원은 “유럽파 선수들은 큰 무대 경험 등 잠재가치가 충분하기 때문에 실전 감각을 길러주기 위한 목적도 있다”고 전했다.
허 감독은 또 “이번 원정은 해외파를 폭넓게 점검할 마지막 기회”라고 말했다. 유럽 원정을 다녀온 대표팀은 내년 1월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전지훈련을 떠난다. 전지훈련과 이어질 도쿄 동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국내파를 충분히 점검할 수 있기에 이번 원정에선 유럽파에게 기회를 주겠다는 얘기다.
SBS 박문성 해설위원은 “주전 윤곽이 잡히는 ‘전시 체제’ 시점을 내년 3월경으로 잡는다면 해외파 점검은 지금이 적기”라고 설명했다.
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