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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 이맛!]갯벌서 캐는 ‘미네랄 덩어리’ 천일염

입력 | 2009-11-06 03:00:00


‘소금이/바다의 상처라는 걸/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소금이/바다의 아픔이라는 걸/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세상의 모든 식탁 위에서/흰 눈처럼/소금이 떨어져 내릴 때//그것이 바다의 눈물이라는 걸/아는 사람은/많지 않다.//그 눈물이 있어/이 세상 모든 것이/맛을 낸다는 것을’ <류시화의 ‘소금’에서>
 
단것은 살을 찌우고, 신 것은 뼈를 기른다. 매운 것은 힘줄을 키우고, 쓴 것은 기(氣)를 북돋운다. 그렇다면 짠 것은 무슨 일을 할까. 한여름 땀을 많이 흘리면, 맥이 축 처진다. 몸에서 짠 기운이 너무 많이 빠져나간 탓이다. 그렇다. 짠 것은 맥을 뛰게 한다.

소금은 바다의 뼈다. 바다의 사리다. 암염(巖鹽)은 바닷물의 화석이다. 옛날 바다였던 곳이 육지로 변한 뒤 소금만 남아 굳어진 것이다. 딱딱하게 굳은 돌소금이다. 소금은 한자로 ‘鹽(염)’이다. ‘로(鹵)’와 ‘감(監)’을 합한 글자이다. ‘로’는 하늘이 만들어낸 소금이다. 바닷가 바위웅덩이나 갯벌에서 바닷물이 증발해서 저절로 생긴 것이다. ‘염’은 인간이 만들어낸 소금을 뜻한다. 갯벌 염전에서 만들어내는 천일염이 그것이다.

요즘 도시인들은 대부분 정제염이나 재제염을 먹는다. 이른바 ‘꽃소금’이라고 불리는 것이 바로 재제염이다. 천일염을 물에 녹인 후, 그 물로 다시 만든 것이다. 국내 꽃소금의 원료는 대부분 호주나 멕시코산 천일염이다. 국산천일염은 가공할 때 철분이 산화되면서 붉은색이나 황색으로 변하기 때문에 사용할 수 없다. 정제염은 바닷물로부터 염화나트륨만 추출해서 만든 것이다. 한마디로 정제염이나 재제염은 대부분 짠맛뿐이다.

천일염은 혀끝에 단맛도 걸린다. 미각이 예민한 사람은 신맛도 느낀다. 쓴맛이야 말할 것도 없다. 정제염이나 재제염은 염화나트륨 비율이 98%가 넘지만, 천일염은 많아야 85%를 넘지 않는다. 나머지는 미네랄 성분이다. 그 미네랄 성분이 감칠맛을 낸다. 온갖 오묘한 맛을 빚어낸다.

‘바다의 깊이를 재기 위해/바다로 내려간/소금인형처럼/당신의 깊이를 재기 위해/당신의 피 속으로/뛰어든/나는/소금인형처럼/흔적도 없이/녹아버렸네’

<류시화의 ‘소금인형’에서>

김치를 담글 때 재제염이나 정제염을 쓰면 무나 배추가 금방 무른다. 오래되면 녹아버린다. 이런 소금으로는 몇 년씩 숙성시켜야 하는 ‘묵은 지’는 꿈도 못 꾼다. 천일염을 쓰면 그 속에 있는 미네랄 성분이 배추 조직을 생생하게 만든다. 익은 뒤에도 아삭아삭 씹는 맛이 유지된다. 짠맛 성분이 많은 중국산으로 절인 배추김치는 맛이 형편없다. 쓴맛이 많이 나고 배추가 녹아 물도 많다. 소금은 배추에 도둑처럼 스며들어, 하나가 되어야 한다. 배추를 죽이면 안 된다. 아예 바닷물을 항아리에 넣어 며칠간 숙성시켰다가, 그 물로 김치를 담가 먹는 집도 있다. 바닷물을 숙성시키면 오염물질이 제거되고 쓴맛도 사라진다.

갯벌 천일염은 한국산이 세계 으뜸이다. 프랑스 주방장들은 ‘게랑드 갯벌 소금에서 석화 냄새가 난다’고 으스댄다. ‘루이 14세가 먹었다’ ‘끝에 단맛이 난다’며 자랑한다. 값도 1kg에 무려 10만 원 가까이 받는다. 하지만 전남 신안 갯벌에서 나는 천일염이 훨씬 미네랄 함유랑이 높다. 그런데도 30kg 한 부대에 2만 원 정도밖에 받지 못한다. 게다가 ‘이물질이 나온다’며 구박까지 받는다. 일본은 소금포장지에 ‘천일염은 이물질이 있을 수 있으니 제거하고 드십시오’라고 써 있다. 프랑스 사람들도 다른 물질이 섞이는 걸 당연하게 여긴다.

천일염이라고 다 똑같은 것은 아니다. 계절과 바람 그리고 기온에 따라 제각기 다르다. 가장 좋은 소금은 한여름 순식간에 만들어진 것이다. 봄이나 늦가을에 나는 소금은 결정 시간이 오래 걸려 쓴맛이 강하다. 하늬바람이 살살 불어야 굵고 실한 소금이 나온다. 서남풍은 마른바람이라 건조해서 짠맛이 강하다. 샛바람엔 소금 꽃이 가늘게 핀다. 동남풍은 무거운 소금이 온다. 보통 간수가 빠지는 3년 정도 묵은 소금이 좋다.

신안 앞바다는 목포보다 수온이 3도 정도 높다. 바닷물 염도도 3도로 농도가 짙다. 여기에 바람까지 늘 불어줘 더할 나위 없다. 갯벌도 유네스코 지정 생물 보존권 지역으로 깨끗하다. 신안 증도 태평염전(061-275-0370)이 가장 넓고 오래됐다. 신안 신일염전(061-275-6844), 성창염전(061-275-1502) 등 전남에만 818개 염전이 있다. 택배도 가능하다. 임자작목반 강대성(010-4624-2765), 도초희망작목반 박성창(011-9602-1070), 신의갯벌작목반 박성춘(011-631-3637). 신안군 천일염산업과(061-240-8347, 8)

음식 맛은 소금이 좌우한다. 현대인들은 미네랄이 거의 없는 소금을 먹는다. 외식업체에서 쓰는 소금은 대부분 인공화학염이다. 여기에 화학조미료까지 쓴다. 인공소금과 화학조미료로 범벅된 음식을 먹는 셈이다. 고혈압은 염화나트륨 덩어리인 나쁜 소금을 먹는 탓이다. 전어나 새우 소금구이를 재제염이나 정제염으로 구워 먹으면 맛이 날까. 굵은 천일염으로 구워 먹어야 짭조름하고 고소한 맛이 난다. 안동 간고등어 맛은 갯벌 소금에서 우러난다. 한국 갯벌 소금에선 전복 멍게 해삼 맛이 난다. 김 미역 파래 매생이 냄새가 난다.

‘이제는 출렁임을 잃은 바다/균형을 잡으려고 평생을 흔들리며 살았지만/수만 년 바닷속 이야기가 지금은 염전에 갇혀있다//…사람도 눈물을 가두고 살면/소금 한 섬 얻으려나/눈물 가둔 사람들도 출렁임을 잃은 바다다’ <이인철의 ‘소금꽃’에서>

김화성 전문기자 mar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