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전 대통령의 임기 마지막 해인 2002년 10월 7일엔 새해 예산안 시정연설 때문에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박관용 국회의장이 3개월 전부터 대통령의 직접 연설을 요청했고, 청와대도 호의적 반응을 보였건만 정작 당일 아침 김석수 국무총리가 대신 나타나자 박 의장이 1시간 동안 본회의 사회를 거부한 것이다. 예산안 시정연설에 대한 대통령들의 관심은 특히 낮은 편으로 지금껏 대통령의 직접 연설은 1988년(노태우), 2003년(노무현), 2008년(이명박) 등 모두 세 번에 불과하다.
▷이 대통령이 작년과는 달리 올해 예산안 시정연설은 정운찬 총리에게 맡겼다. 김형오 국회의장이 “예산안 시정연설은 국민 세금에 대한 정부의 의지를 담은 청사진이므로 대통령이 직접 연설하는 것을 전통과 관례로 세워야 한다”고 요청했건만 이 대통령은 응하지 않았다. 역대 3번의 예산안 시정연설에서 보듯 취임 첫 해 외에는 총리가 대독한 관례를 앞세운 것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오전 라디오와 인터넷을 통한 27번째 대국민 연설은 예정대로 했다. 어느 모로 보나 모양이 좋지 않다.
이진녕 논설위원 jinny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