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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방형남]카다피와 김정일

입력 | 2009-10-01 02:49:00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가 지난달 28일(현지 시간) 미국 CNN방송의 ‘래리 킹 라이브’에 출연해 북한 핵에 대한 견해를 밝혔다. 그는 “북한과 이란의 핵 프로그램이 핵폭탄과 핵무기 제조를 위한 것이라면 우리는 이에 반대한다”며 “반드시 폐기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북한은 2차 핵실험을 실시한 뒤 핵군축을 주장하며 핵보유국 행세를 하고 있기 때문에 카다피의 발언은 핵 포기 촉구나 다름없다. 리비아는 2003년 자발적으로 핵을 포기했다. 카다피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에게 “나를 보고 배우라”는 충고를 한 셈이다.

▷카다피의 CNN 출연은 지난주 유엔총회 연설을 계기로 이뤄졌다. 그는 유엔헌장 사본을 찢는 퍼포먼스까지 보이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를 공격했다. 1시간 40분 동안 원맨쇼를 했다는 비난이 쏟아졌지만 카다피는 총회 연설을 자신의 철학과 정책을 밝히는 기회로 100% 활용했다. CNN도 그의 뉴스 가치를 인정해 1시간짜리 대담 프로에 초청했을 것이다.

▷각국 정상의 유엔총회 참석은 회원국에 주어진 권리다. 올해 유엔총회에는 120개국의 정상이 참석했다. 국제사회와 갈등을 빚고 있는 국가의 지도자들도 유엔을 적극 활용한다. 이란의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 대통령도 총회에 참석해 국익 지키기에 앞장섰다. 올해는 기후변화정상회의도 함께 열렸다. 그런데도 북한은 박길연 외무성 부상을 대표로 보냈다. 북한이 세계 최대 외교무대인 유엔을 활용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지구촌의 고민인 온난화에 대해서도 아무런 관심이 없는 것 같아 안타깝다.

▷김 위원장은 4월 헌법 개정으로 권한이 더욱 막강해졌다. 북한에서 헌법은 장식품에 불과하지만 김 위원장은 ‘최고영도자’ 직함을 새로 챙겼다. 그는 국가 권력을 한손에 쥐고 있으면서도 유엔총회에는 얼씬도 하지 않는다. 불쌍한 주민에게 큰소리만 치고 유엔 무대에 나가 외교전쟁을 벌일 배짱과 능력은 없는 게 아닐까. 용기 있는 자만이 변화할 수 있다. 김 위원장이 유엔에 안 나오는 것을 보면 ‘우물 안 개구리’ 신세를 면하고 국제사회와 화해할 날이 올 성싶지 않다. 카다피를 보면 여러모로 북한 지도자와 비교된다

방형남 논설위원 hnbh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