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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기훈 유서대필’ 18년만에 재심

입력 | 2009-09-17 02:53:00


서울고법 결정… “낙서장 등 새 증거물 무죄 증거 해당”

1990년대의 대표적인 공안사건인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이 18년 만에 다시 사법부의 판단을 받게 됐다. 서울고법 형사10부(부장판사 이강원)는 1991년 분신자살한 김기설 씨의 유서를 대필했다는 혐의(자살방조 및 국가보안법 위반)로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던 강기훈 씨가 낸 재심 신청을 받아들였다고 16일 밝혔다.

재판부는 “김 씨 필적이 담긴 전대협 노트와 낙서장 등 새로운 증거를 2007년 국립과학수사연구소가 다시 감정한 결과 1991년의 국과수 감정 결과 부분은 신빙성이 매우 의심스럽다”며 “이 같은 증거들은 형사소송법이 규정하는 무죄를 인정할 명백한 증거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유서대필 사건은 1991년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 사회부장인 김 씨가 노태우 정권 퇴진을 요구하다 서울 마포구 신수동 서강대 옥상에서 유서 2장을 남기고 분신자살하자 검찰이 당시 전민련 총무부장 강 씨를 김 씨의 유서를 대필했다는 이유로 자살방조혐의로 구속한 사건. 당시 강 씨는 제3의 목격자 등 직접 증거 없이 국과수의 필적감정 결과와 정황에 의거해 자살방조 등의 혐의로 징역 3년에 자격정지 1년 6개월을 선고받고 1994년 8월 만기 출소했다.

이후 강 씨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에 억울함을 호소했고 진실화해위는 2007년 5월 국과수에 김 씨와 강 씨의 다른 필적을 추가로 보내 재감정을 의뢰했다. 재감정 결과 국과수는 ‘유서의 필적은 김 씨의 것’이라며 종전의 감정을 뒤집었고 강 씨는 이를 근거로 지난해 1월 법원에 재심을 청구했다.

재판부는 2007년 진실화해위가 의뢰한 국과수 감정이 절차나 방법에서 1991년 검찰이 의뢰한 국과수 감정보다 신뢰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그 근거로 1991년에는 김 씨 필적의 양이 매우 적었고 국과수 직원 한 명이 혼자 감정한 반면 2007년 재감정 때에는 전대협 노트 등 감정 대상이 훨씬 풍부했고 감정인도 5명 전원이 참여했다는 점 등을 들었다.

현재까지 법원에서 이뤄진 대부분의 재심 사건은 군사정권 시절 중앙정보부나 보안대가 수사를 맡은 과거사 사건이었다. 그러나 유서대필 사건은 검찰이 직접 수사한 대표적 공안 사건이었다. 검찰은 “결정문을 검토한 뒤 즉시 항고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검찰이 즉시 항고하면 대법원에서 재심 개시 여부를 다시 심리하게 된다. 그러나 대법원은 올해 7월 재심 수용 요건을 확대하는 쪽으로 판례를 변경한 바 있어 검찰이 즉시 항고하더라도 재심 청구가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더 높은 것으로 보인다.

이종식 기자 bel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