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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자틀’ 지키되 정책 못박진 않아

입력 | 2009-09-08 02:56:00


美보즈워스 대표 아시아순방 마치고 오늘 귀국
오바마 대북정책, 부시때와 비교해보니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출범한 지 8개월 가까이 지났지만 미국은 별도의 대북정책을 발표하지 않고 있다. 북한이 핵실험 등 잇단 도발에 이어 8월 들어 ‘평화공세’를 벌이는 와중에 이뤄진 스티븐 보즈워스 미국 대북정책특별대표의 아시아 순방도 별다른 국면 전환을 이끌어내지 못하고 있다.

대화를 중시하는 오바마 행정부가 출범할 때만 해도 북한과의 접촉이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지만 실제로는 조지 W 부시 행정부 출범 초기와 비교할 때 별다른 차이가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하지만 미국의 두 행정부가 북한을 상대하는 상황조건과 정책구상을 면밀히 살펴보면 차이점이 드러난다.》

■ 같은 점 - 핵확산방지 최우선 정책, 北-美양자회담엔 선긋기
■ 다른 점 - 포괄 패키지로 北이행 압박, 장기적 카드 들고 ‘시간싸움’

○ 달라진 환경 “시간 싸움에서 유리”

보즈워스 대표는 6일 서울 롯데호텔에서 기자들과 만나 “북한의 태도에 근본적 변화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핵 문제와 관련된 북한의 태도 변화가 없는 한 북한과 상대하지 않을 것임을 강조하는 한편 그의 순방 직전부터 흘러나온 북한의 방북 요청에 대한 분명한 거부의 메시지를 보낸 것이기도 했다.

대북 제재를 제대로, 또 장기간 하겠다는 이 같은 정책 기류의 배경에는 이번만큼은 북한과의 시간싸움에서 유리하다는 자신감이 깔려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과거 북한은 김일성 주석 또는 김정일 국방위원장 체제가 굳건하게 자리 잡은 ‘상수’였던 반면 한국과 미국의 경우 선거로 인한 정권교체로 정책노선이 바뀔 가능성이 많았던 ‘변수’였다. 그러나 이번에 북한과의 협상에서 맞이하는 외부적 환경이 사뭇 다르다.

한국과 미국의 정권은 각각 2013년 초에 교체된다. 북한이 ‘강성대국’을 목표로 하는 2012년 이후의 시점인 것이다. 북한이 후계체제를 완성할 것으로 예상되는 시기도 바로 이때다. 게다가 뇌중풍을 앓은 김 위원장이 그때까지 생존할지도 장담할 수 없다. 한미 양국이 북한과 마주한 이래 처음으로 북한을 상대로 여유 있는 장기적 대북정책을 추진할 환경이 조성됐다는 얘기다.

오바마 행정부의 달라진 대북정책은 북한 핵 문제 해결 구상에서도 드러난다. 한미 양국이 북핵 폐기 이행 방안을 담은 로드맵 성격의 ‘포괄적 패키지’를 내세운 것도 부시 행정부 때와 다른 부분이다. 이행 방안이 마련되지 않아 한 단계를 거칠 때마다 핵 폐기 일정과 이행 방안을 일일이 협의해야 하는 ‘핵 폐기 약속 모음집’ 같았던 부시 행정부 때의 9·19공동선언과는 달리 실질적인 핵 폐기 이행을 추진한다는 것이다.

오바마 행정부가 별다른 대북정책을 발표하지 않는 것도 눈길을 끈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오바마 행정부 초기엔 별도의 대북정책 검토를 했던 것으로 알지만 북한의 잇단 도발에 대응하면서 대북정책이 자연스럽게 정리된 것 같다”며 “미국이 앞으로도 특별히 대북정책을 발표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 똑같은 접근방식 “다자(多者)로 해결”

이언 켈리 미국 국무부 대변인과 필립 크롤리 공보담당 차관보는 최근 6자회담을 거론할 때마다 ‘지역 문제(regional issue)’라는 표현을 쓰곤 한다.

이처럼 미국이 북핵 문제를 ‘지역 문제’로 규정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멀리 떨어진 미국만 바라보지 말고 해당 지역의 주요 행위자들과 대화를 하라는 뜻이다. 북한이 북-미 양자만 고집하지 말고 6자회담으로 빨리 복귀하라는 메시지인 셈이다. 북핵 문제를 6자회담이라는 다자의 틀에서 해결하겠다는 이런 의지는 부시 행정부와 공통점을 보이는 대목이다.

부시 행정부 때와 유사하면서도 일부 차이점을 보이는 대목은 ‘핵 정책’ 부분이다. 오바마 행정부가 지향하는 대외 정책의 핵심은 ‘핵 없는 세상’을 추구하는 것이다. 핵 확산 방지의 중요성에서는 부시 행정부와 일치하지만 미국 스스로도 핵 감축을 추진한다는 점에서 부시 행정부와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일각에선 미국이 어느 순간 북한 핵의 폐기라는 ‘비핵화’ 목표에서 벗어나 북한의 핵 보유를 인정하면서 핵 기술이나 물질의 확산을 방지하는 ‘비확산’으로 방향을 틀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하기도 한다. 그러나 정부 당국자는 “미국이 보유한 핵까지 스스로 포기하는 오바마 행정부의 비핵화 의지가 강하기 때문에 북한의 비핵화 목표를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영식 기자 spea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