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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동빈 기자의 자동차이야기]럭셔리카 판매부진…

입력 | 2009-09-01 02:52:00


불황탓만은 아닙니다

최근 세계적으로 럭셔리 브랜드가 심상치 않습니다. 자동차도 예외는 아닙니다. 지난해 금융위기로 소비심리가 크게 위축되면서 소비자들은 ‘럭셔리’가 과연 삶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재해석하고 있는 듯합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지난달 27일 “경기침체로 고급차를 찾는 소비자들이 갈수록 줄어들자 럭셔리 브랜드 자동차회사도 고급차 생산을 주저하기 시작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지금까지 고급차는 경기의 영향을 크게 받지 않는 분야로 여겨졌습니다. 고급차를 구입하는 ‘부자’들은 불황에도 소비를 줄이지 않는다는 일반적인 경향 때문이죠. 지난해 12월 최고 럭셔리 스포츠카를 만드는 페라리의 루카 디 몬테체몰로 회장은 “페라리의 연간 생산량을 소화해줄 정도로 충분히 미친 6000명의 소비자를 찾을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부가티가 약 30억 원에 달하는 ‘부가티 베이론 컨버터블’ 모델을 내놨는데 전량이 판매 완료됐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는 소량 한정생산하는 초럭셔리 브랜드에 국한된 것 같습니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지난해 고급 자동차의 판매율은 지난해 21%나 줄었습니다. 이는 전체 자동차 판매량 감소율의 2배에 이릅니다. 2005년만 해도 전체 판매량의 21%를 차지했던 고급 자동차 시장은 올해 7월에는 15.6%까지 떨어졌다고 합니다.

1차적인 원인은 경기침체지만 근본적으로는 일반 브랜드가 품질과 기술력에서 약진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럭셔리 브랜드의 자동차는 엔진 성능이나 내구성, 디자인에서 일반 브랜드가 감히 넘볼 수 없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최근 상황은 많이 달라졌습니다. 첨단기술의 보편화로 일반 브랜드도 최첨단 안전장치를 대부분 적용하고 있으며, 내구성과 품질도 럭셔리 브랜드 못지않습니다. 인테리어도 충분히 고급스럽게 바뀌었죠.

일반 브랜드를 대표하는 도요타, 혼다, 현대자동차 등은 웬만해서는 10만 km를 타도 큰 고장이 나지 않습니다. 품질 안정성 면에서도 수많은 전자장비를 넣은 럭셔리카에 비해 비슷하거나 더 높은 평가를 얻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또 다른 이유로는 친환경성이 꼽힙니다. 럭셔리카는 대부분 차체가 크거나 엔진 배기량이 높은 경우가 많은데 아무래도 연료소비효율이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럭셔리 브랜드도 연비가 높은 소형차를 생산하지만 수익성이 대형차에 비해 떨어질 뿐만 아니라 소비자로서도 ‘고급=대형’이라는 인식이 강해서 한계가 있어 보입니다.

이에 따라 럭셔리 브랜드는 진화를 하고 있습니다. 하이브리드와 연료전지, 수소엔진 등을 비롯해 일반 브랜드가 가격 때문에 제공하지 못하는 안전시스템인 졸음방지장치, 차선 이탈 경고장치, 적외선 카메라 등이 그것입니다. 그러나 일반 브랜드의 추격이 거세어 간단치 않은 상황입니다. ‘럭셔리’ 혹은 ‘품격’을 유지하는 것은 어려운 일인가 봅니다.

석동빈 기자 mobidi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