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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호택 칼럼]트위터도 없는 북한

입력 | 2009-06-29 02:59:00


박지성이 월드컵 예선 이란전 후반 36분에 이근호와 패스를 주고받으며 기막힌 동점골을 넣었지만 이 골이 북 체제의 후계구축을 간접적으로 돕게 될 줄은 미처 몰랐을 것이다. 북한은 ‘월드컵 축구 본선에 진출하게 된 것은 김정운의 체육부문에 대한 세심한 지도와 배려에 따라 이루어진 성과’라고 노동당원을 대상으로 집중학습을 시작했다는 소식이다.

열린북한통신(대표 하태경) 자유북한방송(대표 김성민)을 비롯한 북한민주화 운동 단체들은 북한 내부 통신원들이 중국 국경 근처에서 중국 휴대전화를 통해 보내는 생생한 소식을 전한다. 북은 김정운 후계 확정을 강성대국 원년(元年)인 2012년에 발표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그 이전부터 권력승계의 기반을 다지는 작업이 필요할 것이다.

정원식 전 국무총리가 얼마 전 본보 주성하 기자가 쓴 기사를 읽고 필자와 주 기자를 초대해 저녁 자리를 가졌다. 정 전 총리는 황해도 재령 출신으로 노태우 정부 시절 평양을 네 차례 방문해 북의 연형묵 총리와 고위급회담을 하고 남북 접촉의 장전(章典)에 해당하는 기본합의서를 체결했다. 김일성대학에 다니던 주 기자는 평양 텔레비전에 나온 정 전 총리의 얼굴과 기본합의서의 서명을 기억한다고 말했다.

정 전 총리가 “북에서 3대 세습이 성공할 것 같으냐”고 묻자 주 기자는 “3대 세습이 성공할 것으로 봤다면 북에 눌러앉아 당 간부를 하며 살았을 것”이라면서 “북의 체제가 오래가지 않으리라고 판단했기 때문에 생사를 걸고 인생의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남한으로 왔다”고 대답했다.

北‘김정운 위대성’ 집중학습 시작

이명박 대통령이 방미 중 만났던 한반도 전문가들은 북한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상황은 후계 문제와 깊은 연관이 있다는 데 견해가 대체로 일치했다. 북한 전문가들은 김정운의 승계가 김정일만큼 순탄치 않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한다. 김정일은 아버지의 동지였던 혁명 1세대인 김책 최용건 김일이 업고 다니며 부대의 마스코트처럼 성장했다. 그러나 나이 어린 김정운이 과연 북한 군부의 지지를 얻고 안착할 수 있을지, 누구도 자신 있게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북한에서 국방위원회는 외교와 내정을 사실상 총괄하는 최고 권력기구로서 3대 승계 작업에서도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정황이 포착되고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매제 장성택은 4월 9일 최고인민회의에서 새로 임명된 국방위원 5명에 포함됐다. 다른 간부들이 김 위원장 앞에서 숨소리도 제대로 내지 못하는 데 비해 장성택은 그나마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이다. 김경희(김정일의 여동생)의 남편인 장성택은 지금까지 김정남을 감쌌지만 국방위원이 되면서 김정운 후계체제를 다지는 역할을 맡았다고 정보기관은 분석한다.

북 외무성은 4월 29일 대북 제재조치를 취한 유엔 안보리가 사죄하지 않을 경우 공화국의 최고 이익을 지키기 위해 부득불 추가적인 자위 조치들을 취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라는 협박조의 대변인 성명을 발표했다. 북한 전문가들은 이러한 협박조 성명은 외무성 작품이 아니라 국방위원회에서 초안을 잡은 것이 분명하다고 말한다. 개성공단이 잘 풀리지 않고 강성으로 흐르는 것도 배후에서 국방위원회가 작용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국방위원회 김영철 정책실장(중장) 등 군 관계자 5명은 작년 12월 17일 개성공단을 방문해 현황을 파악하고 “공화국에서 경제가 정치 앞에 있지 않다”는 발언을 했다. 대표적인 남북 경제협력 사업에 대한 군부의 인식을 보여줄 수 있는 발언이다.

북의 승계나 체제 변화는 중국과 떼어놓고 바라볼 수 없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중국이 대북 제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 북한을 붕괴시킬 수도 있지만 그것은 중국이 원하지 않는 시나리오”라고 말했다. 북의 근본적인 변화를 바라지 않는 중국이 배후에서 버텨주는 한 북은 60년 넘게 지탱한 관성으로 그럭저럭 연명(延命)해 나갈 수도 있을 것이다.

3대 승계 다지기 국방委가 주도

이란에서는 30년 호메이니 가문이 이끌어온 신정(神政)이 흔들리고 있다. 이란에는 정부가 언론을 통제해도 휴대전화와 트위터(인터넷 짧은 문자 서비스)가 있고, 개표를 조작했지만 대통령 직접선거라도 있다. 현대적인 통신이 거의 차단된 북한 사회에서 남쪽의 몇몇 단체가 풍선에 전단을 실어 날려 보내고, 대북 라디오 전파를 쏘는 것으로 변화를 이끌어내기에는 힘에 부쳐 보인다.

북은 당과 군의 지배계급에 각종 특혜를 주어 주민을 통제하는 사회다. 주민 대다수가 굶주리는 고통을 겪고 있지만 북은 지배계급의 충성과 공포정치를 바탕으로 세습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김정운의 3대 세습이 자리를 잡으면 고통의 나날을 보내는 북한 주민의 해방은 그만큼 늦어진다는 의미다.

황호택 논설실장 hthw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