獨 “대선때 브란덴부르크문 연설 거절한 보복?”
佛 “사르코지 만찬 거절 당해…G20회담 후유증?”
역사적인 카이로 연설을 마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유럽 실무방문에 나섰다. 독일과 프랑스에서 각각 하룻밤씩 보내는 강행군이다. 꼭 필요한 일정만 소화하며 압축적으로 정상외교를 펼치는 오바마 스타일 그대로다. 그런데 이런 스타일에 익숙하지 않은 독일과 프랑스에선 ‘우릴 소홀하게 대하는 것 아니냐’는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다.
○ 독일을 홀대?
이집트를 떠나 4일 밤 옛 동독 지역인 드레스덴에 도착한 오바마 대통령은 5일 앙겔라 메르켈 총리와 정상회담을 했다. 이어 노벨 평화상 수상자이며 홀로코스트 생존자인 작가 엘리 위젤과 동행해 나치 수용소인 부헨발트를 방문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5만6000명이 희생된 곳이다. 1945년 4월 이 수용소를 해방시킨 미군 가운데는 오바마 대통령의 작은할아버지(외할머니의 남동생)도 포함돼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오후에 파리로 떠났다. 현재 독일인 사이에 인기가 높은 대통령이 24시간도 안 되는 짧은 일정을, 그것도 수도 베를린도 들르지 않고 떠나자 일부 언론은 실망감을 표출하고 있다. 지난해 대선을 앞두고 후보시절 베를린 브란덴부르크문 앞에서 연설하고 싶다는 오바마의 요청을 메르켈 총리가 “유세 연설에 적절한 곳이 아니다”라며 거절한 데 대한 보복 아니냐는 해석까지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이는 철저히 일 중심으로 일정을 짜는 ‘오바마 정상외교 스타일’에 대한 이해 부족이란 게 중론이다. 메르켈 총리와 아무리 사이가 좋다 해도 비슷한 일정을 짰을 것이란 게 워싱턴 외교가의 시각이다.
이번 방문 형식 및 일정과 별개의 문제로 양국 관계가 매끄럽지 않은 건 사실이다. 외관상 협력과 조화를 강조하고 있지만 물밑에는 긴장과 불협화음이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뉴욕타임스는 5일 “경제위기 대책에서부터 아프가니스탄전쟁, 관타나모 수감자 이송 등을 놓고 이견이 있다”고 보도했다. 메르켈 총리는 올 3월 워싱턴을 방문하는 대신 화상회의로 대신했다. 독일 언론에선 “매끄러운 매너로 대중을 휘어잡는 오바마는 차분한 성격의 메르켈보다는 번지르르한 니콜라 사르코지(프랑스 대통령)와 궁합이 맞는다”는 말도 나온다.
○ 만찬 초대 퇴짜 맞은 사르코지
오바마 대통령은 5일 오후 드레스덴을 떠나 오후 8시 반경 파리에 도착해 주프랑스 미국대사 관저에 여장을 푼다. 미셸 여사와 두 딸도 워싱턴에서 날아와 ‘아빠’와 합류한다. 오바마 대통령은 6일 노르망디 상륙작전 65주년 기념식 참석 등의 일정을 소화한 뒤 워싱턴으로 돌아갈 예정이다.
사르코지 대통령은 오바마 대통령 부부에게 5일 밤에 미 대사 관저에서 가까운 자신의 주말용 아파트에서 저녁식사를 하자고 제의했으나 거절당했다고 UPI통신 등이 전했다. 일부 프랑스 언론은 사르코지 대통령이 4월 런던 주요 20개국(G20) 회담에서 스포트라이트를 혼자 받으려 하면서 사석에서 오바마 대통령에게 생색을 내려 한 것과 이번 초대 거절을 연관시키기도 했다.
워싱턴=이기홍 특파원 sechep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