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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떠오르는 새 별]피아니스트 김준희

입력 | 2009-06-04 02:59:00


콩쿠르 입상보다 연주법 고민하는 ‘작은 쇼팽’

《한국 클래식계의 샛별들이 남다른 재능과 음악성으로 세계 콩쿠르 무대에서 두각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를 발판으로 그들은 클래식계의 차세대 리더로 도약하기 위해 날개를 퍼덕이고 있습니다. 매주 목요일 그들의 성장통과 고민과 꿈을 들어봅니다.》

피아니스트 김준희 씨(19·한국예술종합학교)의 2009년 초여름은 빠른 리듬으로 흘러가고 있다. 지난달 네 차례의 ‘백건우와 김태형 김준희 김선욱’ 공연을 비롯해 금호아시아나솔로이스츠 단원으로 실내악 연주, 모교 오케스트라인 크누아(KNUA) 심포니 정기연주회에 협연자로 섰다. 이달에는 19일 독주회와 더불어 리처드 용재 오닐(비올라), 스테판 재키브(바이올린)와 함께 하는 ‘앙상블 디토’ 공연을 앞두고 있다.

그는 백건우 씨와 함께 네 대의 피아노가 함께 울리는, 드문 연주를 경험했다. 5월 10일 첫 공연을 마친 뒤 가벼운 ‘투정’을 부렸다. “선생님, 체르니 곡 솔로 부분을 연주할 때 시선이 온통 집중돼 부담스러워요.” “그래서(주목 받으라고) 준희 너 시킨 거야.” 미소를 띤 백 씨의 답이었다.

백 씨는 김 씨의 음악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어린 시절 라흐마니노프라는 작곡가를 처음 안 것도 백 씨의 음반을 통해서였다.

두 사람의 첫 만남은 김 씨가 2007년 프랑스 롱티보 콩쿠르에 참가했을 때였다. 파리에 사는 백 씨는 연습실에서 한국 학생 2명이 콩쿠르 결선에 올랐다는 소식을 듣고 한걸음에 달려왔다. 김 씨는 그날 백 씨 부부와 함께 저녁을 먹었다. 백 씨가 프랑스에 사는 줄도 몰랐던 10대는 거장의 격려조차 얼떨떨할 뿐이었다. 콩쿠르에선 2위에 입상했다.

이 콩쿠르가 끝난 뒤 김 씨의 표현에 따르면 엄청나게 많은 질문을 갖고 귀국했다. 우수한 성적을 거둔 까닭에 연주 제의가 쏟아졌지만 정중히 거절했다. 화려한 연주회보다 곡 해석이나 연주법 등 배우고 싶은 것이 더 많았다. 해답을 찾는 데 충실하자고 다짐했다.

올해 김 씨는 졸업반이다. 서울예고에 수석 입학한 뒤 1학년 때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재 전형에 합격해 또래보다 2년을 앞서 나갔다. 그는 스스로 고교생 머리로 대학생에게 바라는 것들을 했기 때문에 매일 헷갈렸다고 말했다.

그는 6세 때 형을 따라 피아노 학원에 다니다가 초등학교 4학년부터 ‘음대생 누나’에게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했다. 그가 피아노를 워낙 좋아하고 잘 치니까 그 누나는 예원학교 2학년 때 자신의 지도교수인 연세대 이경숙 교수를 소개했다. 이 교수는 그가 한예종 진학의 포부를 밝히자 예고 입시 1주일 전 임종필 교수에게 보냈고 이후 지금까지 임 교수를 사사하고 있다.

그가 늘 칭찬 속에 피아니스트의 길을 걸어온 것은 아니었다. 예원학교 시절엔 학생들끼리 서로 돌아가면서 감상평을 적은 종이에서 ‘못 들어 주겠다’는 혹평도 받았다.

한예종에서는 곡 해석할 때 다르게 생각해보라는 교수의 주문과 달리 열 번까지 자기 연주 스타일을 고집해 지독하게 혼난 적도 있다.

그는 매일매일 배운다. 백 씨와 함께 공연을 준비하면서 연주자의 삶과 자세, 곡 만드는 법을 어렴풋이 알게 됐다고 고백한다. ‘악보 속에 모든 답이 있다’는 말도 알 것 같다. 불투명한 미래가 조금 보이기도 한다.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에서는 지휘자를 통해 단원들과 앙상블을 맞춰가는 법을, 실내악에선 음악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법을, 친구들과의 대화에선 연주자로서의 길을 고민한다.

최근 독일영화 ‘포미니츠’를 본 뒤 영감이 폭발해 새벽에 붉은 등 하나 켜놓고 쇼팽의 프렐류드 4번을 연주했다는 10대 피아니스트는 스스로를 이렇게 묘사했다. “뭔가 하나는 해낼 피아니스트.”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