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8회 스승의 날을 맞아 홍조근정훈장을 받게 된 전남 장흥실업고 윤정현 교사(가운데)가 2월 재직하던 보성실업고에서 졸업생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여건이 어려운 제자들을 친자식처럼 보살핀 윤 교사에게 제자들은 직접 감사패를 만들어 고마움을 전했다. 사진 제공 윤정현 교사
보성실업고에 ‘꿈을 심은 스승’ 윤정현 교사, 지갑 털어 원서비까지 도와줘
오늘 홍조근정훈장 수상
전남 보성군에 있는 보성실업고는 3년 전만 해도 여느 실업고와 다를 바가 없었다. 학생들은 자격증을 한두 개 따서 취업할 곳을 찾아 나섰다. 영어 수학은 물론이고 한글도 제대로 읽지 못한 채 사회에 나가는 학생이 매년 예닐곱 명이나 됐다. 학년당 50명 남짓한 이 학교에서 적지 않은 수였다.
3년 전 보성실업고에 큰 변화가 일었다. 윤정현 교사(49)가 부임해 아이들을 끊임없이 독려하면서 아이들이 변하기 시작했다. 윤 교사는 독서반을 만들어 ‘가나다’부터 가르쳤다. 1년 정도 지나자 대부분 한글을 깨쳤다. 윤 교사는 신문에서 취업에 유리한 자격증이 소개되면 모두 오려 아이들에게 읽혔다.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자격증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책과 공구를 손에 쥐게 됐다.
아이들이 글도 읽게 됐고, 공부를 해야 한다는 필요성도 깨닫게 됐지만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대부분 집안이 너무 어렵다는 것. 학원비는커녕 자격증 시험 원서를 살 돈도 없는 학생이 많았다. 윤 교사는 아이들이 적당한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자신의 지갑을 털어 아이들 손에 원서비와 시험을 보러 가는 데 드는 교통비를 쥐여줬다.
결과는 놀라웠다. 지난해 자동차과 3학년 학생 40명이 무려 460개의 자격증을 따냈다. 1인당 두 자릿수(평균 11.5개)의 자격증을 따낸 것은 전국 전문계고 가운데 첫 기록이었다. 지난해 윤 교사를 만날 당시 고교 2학년이었던 박지현 양은 장래 희망이 할인점 판매원이었다. 무슨 직업이 있는지, 어떤 노력을 해야 할지 알려주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박 양은 윤 교사를 만나 자격증을 무려 34개나 따내면서 지난해 대한민국 인재상을 수상하는 등 기염을 토했다.
올해 3월 예전에 근무하던 장흥실업고로 자리를 옮긴 윤 교사는 변함없이 ‘친부모 같은 교사’로 일하고 있다. 가정방문을 다니면서 아이들이 처한 환경을 꼼꼼히 살펴보고 개개인에게 적합한 진로지도를 하기 위해 밤잠을 줄이는 것이 생활이 됐다.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그는 15일 제28회 스승의 날을 맞아 홍조근정훈장을 받게 됐다. 윤 교사는 “아무리 가르쳐도 한글을 깨치지 못했지만 기능 분야에 집중해 자격증 7개를 따낸 제자, 1년 만에 한글을 터득해 각종 자격증을 따낸 제자, 학원비가 없어 식당일을 하면서 주경야독한 제자들을 보면서 내가 더 많은 가르침을 받았다”고 겸손하게 말했다.
교육과학기술부는 15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교육문화회관에서 스승의 날 기념식을 열고 윤 교사를 비롯한 모범 요원 6802명에게 훈포장을 수여한다. 기념식은 교과부와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을 제외한 교원노조(한국교원노동조합, 자유교원조합, 대한민국교원조합)가 공동 주최한다.
김희균 기자 foryou@donga.com
스승의 날 포상자 명단
▽홍조근정훈장 △충북단재교육연수원 이근청 △장흥실업고 윤정현 △대전오류초 박무영 △경남여고 박일영 △전통예술고 김수란 △인천신흥초 박진상 ▽녹조근정훈장 △율곡초 윤삼현 △구산초 안영준 △강경고 김경애 △경산과학고 이칙희 △철원여고 최승일 △고려대 김창진 △국립특수교육원 이효자 ▽옥조근정훈장 △가톨릭상지대 김재문 △이천남초 함성억 △대전체고 이왕복 △전북교육청 문홍근 △매천중 박헌영 △서울가동초 구본국 △서울신학초 박상철 △강릉고 함영세 ▽근정포장 △광주동신여중 윤영문 △마산여고 정재표 △진동초 황성식 △영동초 임영빈 △대전구봉중 나도창 △경기안양교육청 박호순 △성지고 한승배 △모덕초 고분자 △다운초 허태권 △삼성초 정희철 △구룡포초 권혁수 △전주제일고 이병운 △경북대사대부초 권기옥 △금옥여고 박종원 △서면초 조원구 △문막초 이성표 △제물포여중 이진범 △한밭대 설동호 △공주교대 유원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