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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M&A서 선거 개입까지 ‘봉하대군의 힘’

입력 | 2009-03-21 02:58:00

돈 받은 창고노건평 씨가 주변 사람들로부터 돈을 받은 장소로 알려진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 저수지 옆 창고. 외부인의 출입이 거의 없는 외진 곳이다. 노 씨는 창고 앞 평상에서 손님들과 만났고 저수지에서 낚시도 했다. 김해=강정훈 기자


노건평씨 한마디에 박연차회장 5억 선뜻 내놔

檢중수부장 “4월은 잔인한 달”… 수사확대 시사

“참여정부 당시 ‘봉하대군’은 경남 김해 지역의 정치와 경제를 아우르는 실력자였나.”

농협의 세종증권 인수에 개입한 혐의로 지난해 구속된 노무현 전 대통령의 형 노건평 씨가 국회의원 후보자의 선거자금 조달에도 관여한 것이 검찰 수사에서 드러나자 검찰 안팎에서는 이 같은 탄식이 흘러나왔다.

▽기업 인수합병(M&A)부터 선거 개입까지=대검찰청 중앙수사부(부장 이인규)는 노 씨가 2005년 4·30 재·보궐선거 당시 김해갑 선거구에 당시 열린우리당 후보로 전략 공천된 이정욱 전 한국해양수산개발원장에게 5억 원의 선거자금을 전달한 것으로 조사됐다고 20일 밝혔다.

이 과정에서 노 씨는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에게서 직접 돈을 받아 이 전 원장에게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 씨는 직접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 저수지 옆 창고에서 두 차례 박 회장을 만나 라면박스에 담긴 돈을 받았으며, 이 돈을 이 전 원장에게 넘겼다는 것.

검찰은 노 씨의 행동이 한 차례에 그치지 않은 것에 주목하고 있다. 노 씨는 2005년 4월 20일 박 회장에게 받은 2억 원을 이 전 원장에게 전달한 데 이어 선거 막바지 이 전 원장이 ‘실탄’ 부족을 호소하자 다시 3억 원을 박 회장에게 받아 전달했다.

이 때문에 검찰은 이 전 원장뿐만 아니라 다른 정치인들도 노 씨를 통해 박 회장 등의 돈을 받아 선거자금 등으로 썼을 소지가 있다고 본다. 당시 노 씨의 말 한마디에 박 회장이 일면식도 없는 이 전 원장에게 5억 원을 건넬 만큼 노 씨의 영향력이 컸다.

이미 노 씨는 지난해 12월 대검 중수부의 수사에서 노 전 대통령의 고교 동창인 정화삼 씨 형제와 함께 세종증권 측으로부터 정대근 전 농협중앙회장에 대한 로비 명목으로 29억6300만 원을 받은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로 구속기소됐다.

▽저수지 옆 창고 ‘애용’=이번 수사에서 노 씨가 이 전 원장에게 줄 돈을 박 회장에게서 건네받은 곳은 봉하마을 저수지 옆 창고.

이 창고는 노 씨 집에서 500m 떨어진 곳에 있는 저수지 옆에 벽돌, 스티로폼 등으로 어설프게 지은 가건물로, 이 마을에선 인근 텃밭을 가꾸기 위해 농기구를 보관하는 자재창고로 알려져 있다.

이곳은 노 씨가 2006년 4월 정화삼 씨의 동생 정광용 씨에게서 세종증권 인수 로비 대가로 두 차례에 걸쳐 각각 상자에 담긴 현금 2억 원과 1억 원을 받은 장소다. 현재까지 검찰 수사로 드러난 것만 해도 한 해 사이에 이 창고에서 현금 8억 원이 건네졌다.

검찰은 이 창고가 인적이 드물고 야산 옆인 데다 지붕이 덮인 주차장이 붙어 있기 때문에 이곳에 차를 세워두고 돈을 주면 외부에서 잘 보이지 않아 노 씨가 현금을 받는 장소로 이용한 것으로 보고 있다.

한편 이날 박 회장 관련 수사를 총괄하는 이인규 중수부장은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4월은 잔인한 달”이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이 부장은 미국의 시인 T S 엘리엇의 장편시 ‘황무지’를 인용해 “차라리 겨울이 따뜻했다”며 이 같은 말을 던졌다.

이를 두고 “검찰이 다수의 정관계 인사가 박 회장에게 불법적으로 돈을 받은 정황을 확보했으며 4월에 대대적인 사정이 시작되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하지만 이 부장은 “집 뒤뜰에 라일락이 심어져 있었다. 한창 때 라일락 향기로 쓰러질 정도였다”면서 “계절을 빗대 한 말”이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최우열 기자 dnsp@donga.com

전지성 기자 vers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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