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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사든 기업이든 흑자도산하게 내버려두지 않겠다”

입력 | 2008-10-28 02:59:00

이명박 대통령이 27일 국회에서 작금의 금융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며 희망을 갖자는 내용의 시정연설을 마친 뒤 본회의장을 나서면서 기립박수를 보내는 한나라당 의원들과 악수하고 있다. 전영한 기자


■ 李대통령, 국회 시정연설

“한국에 외환위기 없어… 해법도 10년전과 달라야

13조원 감세 - 공기업 선진화도 흔들림 없이 추진

아직도 성역으로 있는 덩어리 규제 과감히 풀어야”

이명박 대통령은 27일 국회에서 밝힌 ‘2009년도 예산안 및 기금운용계획안에 대한 정부의 시정연설’에서 최근 미국발(發) 금융위기로 불거진 경제위기에 대한 인식과 정부의 해법 및 주요 국정과제의 실천방안을 제시했다. 급변하는 경제 환경에 맞춰 수정된 최신판 ‘MB노믹스’의 청사진인 셈이다.

○“4분기 경상흑자 되면 외환상황 호전”

이 대통령은 최근 경제상황과 관련해 이른바 ‘9월 위기설’부터 이어져 온 ‘2차 외환위기설’을 일축하면서 금융위기가 실물경제 침체로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겠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 대통령은 구체적 숫자를 거론하며 외환위기 가능성을 반박했다. 이 대통령은 “외화 유동성 문제는 현 보유 외환으로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 올해 초부터 9월까지 외환보유액은 2600억 달러에서 2400억 달러로 약 8% 감소하는 데 그쳤다”며 “4분기(10∼12월)부터 경상수지가 흑자로 돌아서면 외환 상황은 훨씬 호전될 것”이라고 말했다.

원화 유동성에 대해서는 “금융회사든 일반 기업이든 흑자 도산하도록 내버려두지는 않을 것”이라며 “정부는 선제적이고 충분하며 확실하게 유동성을 공급하겠다”고 재차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이런 상황인식을 바탕으로 “현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해법도 10년 전과는 달라야 한다”고 역설했다.

유동성을 충분히 공급하고 내수를 활성화하기 위해 적극적인 재정 정책을 펴겠다고 선언했다. 한마디로 정부가 곳간을 열어 필요한 곳에 돈을 쓰겠다는 것이다.

○“필요하면 과감하게 돈을 쓰겠다”

이 대통령은 적극적 재정정책을 위해 2009년도 예산안 증액을 제안했다. 그는 “불을 끌 때도 초기에 충분한 물을 부어야 단시간에 진화가 가능하다”며 “내년도 예산안은 금융위기가 본격화되기 전에 다소 긴축적인 방향으로 편성된 만큼 내수 활성화를 위해 국회심의 과정에서 (예산안의) 세출을 늘려 달라”고 국회에 요청했다.

경기 진작과 가계의 가처분소득 제고를 위해 13조 원 수준의 감세 정책을 예정대로 진행하겠다는 점도 다시 확인했다.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1000억 달러 규모에 이르는 국내 은행의 외환차입 보증안(지급보증안)에 대해서도 “이 돈을 다 쓸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이런 선제적 조치를 취하면 은행들의 금리부담도 줄어들 것”이라며 국회의 조속한 처리를 당부했다.

이 대통령은 이와 함께 최근 다녀온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 결과를 거론하며 “기존의 금융체제로는 더는 위험을 예방할 수 없는 만큼 신금융질서 구축이 필요하다. 한중일 등 동북아 공조체제 구축에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최근 경제상황과는 별도로 국가체질을 개선하고 사회시스템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 MB노믹스의 핵심인 △규제개혁 △저탄소 녹색성장 △공기업 선진화 등을 흔들림 없이 추진하겠다고 역설했다.

특히 규제개혁에 대해서는 “경제 난국을 극복하는 지름길이며 국민 정서를 빌미로 아직도 성역으로 남아있는 덩어리 규제를 과감하게 풀어야 한다”고 말해 최근 경제위기 상황을 맞아 일각에서 제기하는 ‘규제 옹호론’을 일축했다.

지방 행정구역 개편에 대해서도 “구한말에 골격이 짜인 만큼 행정구역과 생활권의 불일치 등 많은 문제점이 있다”며 “정파 이익을 초월해 백년대계를 내다보는 밑그림을 그려 달라”고 호소했다.

이승헌 기자 ddr@donga.com


▲ 영상취재 : 동아일보 사진부 전영한 기자



단호히… 적극적으로… ‘신뢰 심기’ 온힘

결의밝히는 단어 17회 써

박수는 한나라만 9차례

민노당 집단 퇴장하기도

27일 이명박 대통령의 국회 시정연설에서 핵심 키워드는 ‘결의’ ‘자신감’ ‘희망’이었다.

이 대통령은 자신의 ‘결의’를 보여주기 위해서인지 부사(副詞)를 많이 사용했다. 이 대통령은 평소 수식어가 많은 장문보다는 단문을 선호하지만 이날 연설에서는 달랐다.

그는 ‘반드시’ ‘단언컨대’ ‘단호하게’ ‘분명히’ ‘충분히’ ‘적극적으로’ ‘결코’라는 단어를 모두 17회 정도 썼다.

‘자신감’을 표현하는 문장도 많았다. “위기를 극복할 수 있겠느냐는 우려에 대해 저는 분명히 말씀드리겠습니다. 할 수 있습니다” “지금 보유한 외환으로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습니다” “금융회사든 일반 기업이든 흑자 도산하도록 내버려두지는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자랑스러운 역사” “위대한 국회” “위대한 대한민국” 등이다.

‘희망’을 강조한 대목도 눈에 띄었다.

이 대통령은 “우리는 반드시 희망의 출구로 나아가게 될 것”이라며 “세계 경제가 회복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결코 희망의 끈을 놓으면 안 된다”고도 했다.

또 이 대통령은 “모든 위험이 사라질 때까지 기다리는 배는 결코 출항할 수 없다”면서 “억수같이 장대비가 퍼부어도 구름 위에는 언제나 찬란한 태양이 빛나기 마련이다”고 역설하기도 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오전 10시 박계동 국회 사무총장의 안내로 본회의장에 입장했다.

통로를 따라 단상으로 이동하며 마주치는 의원들과 가벼운 악수로 인사를 나눈 뒤 연설을 시작한 이 대통령은 경제위기에 대한 정부의 대응방향에 신뢰를 심어주려는 듯 시종 자신감 있는 표정으로 또박또박 준비한 연설문을 읽어 내려갔다. 이 대통령이 입은 검은 양복에 은회색 민무늬 넥타이 역시 안정감을 주기 위한 코디네이션으로 보였다.

경제위기에 따른 무거운 분위기를 반영하듯 30분가량의 연설 동안 박수는 9번에 그쳤다. 7월 11일 국회 개원연설 때 나온 27번의 박수에 비해 횟수도 현저히 줄었고, 그나마 한나라당 의원들이 앉은 쪽에서만 박수 소리가 터졌다.

이 대통령이 입장할 때 기립했던 민주당, 자유선진당 의원들은 연설이 이어지는 동안 전혀 박수를 치지 않았고, 이 대통령이 퇴장할 때는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않았다.

민주노동당 의원 5명은 이 대통령의 연설이 시작되자 ‘서민 살리기가 우선입니다’ 등이 쓰인 플래카드를 꺼내들었고, 10분 만에 아예 집단 퇴장했다.

박민혁 기자 mhpark@donga.com

길진균 기자 leon@donga.com

여 “국회가 대승적인 자세 보일때”

야 “정책기조 변경이 설득 출발점”

■ 정치권 반응

27일 이명박 대통령의 국회 시정연설에 대해 여야의 반응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한나라당 조윤선 대변인은 논평에서 “좌절하고 있는 국민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어 움츠린 가슴을 활짝 펴게 하고 한민족의 저력을 일깨우게 하는 감동을 줬다”고 평가했다.

조 대변인은 “경제현실에 대한 냉철한 현실 진단을 바탕으로 현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단호한 해법을 제시했다”며 “국회가 위기 극복에서 외딴섬이 되지 않도록 초당적이고 대승적인 자세가 절실하다”고 야당의 협조를 요청했다.

반면에 민주당 최재성 대변인은 브리핑을 통해 “이미 경제위기 극복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야당인데 (이 대통령은) 초당적 협력을 되뇌고 있다. 그러면서 기존의 실패한 정책을 고수하는 파당적 자세를 보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국민은 모든 것을 상황 탓, 국민 탓, 야당 탓으로 돌리는 대통령의 자세에 실망할 수밖에 없다”며 “경제팀 교체와 경제정책 기조 변경이 국민에게 도와달라고 설득할 수 있는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자유선진당 류근찬 정책위의장은 “대외신인도를 나타내는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이 태국이나 말레이시아보다도 높은 수준인데도 ‘외환위기가 없다’거나 위기 원인이 ‘심리적인 것’이라는 진단은 매우 무책임하거나 안이한 인식”이라고 논평했다.

민주노동당 박승흡 대변인은 “고삐 풀린 금융에 대한 강력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것은 세계적인 흐름인데 규제완화를 통해 위기를 돌파하겠다는 대통령의 현실 인식에 절망한다”면서 “위기극복 대책이 정확히 제시돼야 야당은 협력할 수 있다”고 말했다.

홍수영 기자 gae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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