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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나는 공부]“ABC도 못 뗀 삼남매,미 명문대 입학”

입력 | 2008-10-21 02:58:00


자녀 셋 하버드·MIT 합격시킨 이숙정 씨가 말하는 조기유학 노하우

‘Ivy리그 입성’을 목표로 어린 자녀를 미국행 비행기에 태우는 부모가 적지 않다. 조기유학이 Ivy리그 입학의 보증수표는 결코 아니다. 때로는 영어 실력 때문에, 때로는 현지적응 실패 때문에 방황하는 자녀로 고민하는 가정도 많다.

자녀 셋을 모두 하버드대와 메사추세츠공대(MIT)에 입학시킨 이숙정(64·서강 SLP 마포, 용산센터 원장) 씨는 조기유학을 생각하는 부모가 묻고 싶은 게 한 두가지가 아닌 사람이다. 큰딸 양희라(38) 씨는 하버드대 경제학과와 경영대학원, 둘째 딸 희원(36) 씨는 하버드대 사회학과와 법학대학원, 막내 아들 희민(32) 씨는 MIT 전자공학과에서 학부와 대학원(박사)을 졸업했다. ‘하늘의 별따기’라는 명문대에 삼남매를 모두 합격시킨 이 씨에게 조기유학의 노하우를 들어본다.

○ 알파벳도 모른 채 미국으로

이 씨가 세 자녀와 함께 태평양을 건넌 것은 1981년 12월. 미국의 대학원에서 공부하던 남편이 교육 여건이 좋은 미국에서 아이들을 3년만 교육시키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해 서울의 약국을 정리하고 메릴랜드 주의 주도(州都) 아나폴리스로 이사갔다.

맏딸 희라가 초등학교 6학년, 둘째 딸 희원이 4학년, 막내 희민이가 유치원을 마쳤을 때였다. 당시 초등학교에선 영어를 배우지 않았기 때문에 삼남매 모두 ‘A, B, C…’도 모르는 상태로 미국 학교에서 공부하느라 현지 적응에 어려움이 많았다.

초기적응의 가장 큰 걸림돌은 영어. 둘째와 막내는 쉽게 적응했는데 맏딸 희라의 영어실력이 좀처럼 늘지 않았다. 학교에서 ESL(English as Second Language) 수업 교사에게 알파벳을 처음 배웠던 날 희라는 “엄마, 선생님이 칠판에 무슨 그림을 그리는데 뭐라는지 하나도 모르겠어”라고 말할 정도였다.

ESL 코스를 수강한지 6개월 쯤 지났을 때 희라는 “ESL 수업은 이제 듣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다른 과목 성적은 미국 아이들보다 좋은데 영어에서 열등감을 느껴 자존심이 상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이 씨는 희라가 한국에서 번역본으로 이미 한 번 읽은 동화책의 영어판본을 구해서 읽게 했다. 아는 내용이기 때문에 영어로 읽어도 쉽게 이해할 수 있고 어휘력도 빠르게 늘었다. 방학 때는 음악캠프, 자원봉사 등에 적극 참가시켜 현지 학생들과 어울리며 자연스럽게 영어를 듣고 말하는 환경을 만들어줬다. 희라는 미국에 온 지 2년 만에 영어 상급반 수업에서 ‘A’ 학점을 받을 수 있었다.

○ “교육 위해서라면”…미국판 맹모삼천지교

세 아이 모두 미국 교육에 잘 적응하자 한숨 돌리자 새로운 고민이 시작됐다. 희라가 고등학교에 들어갈 나이가 되자 대학 진학 실적이 좋은 학교가 있는 학군으로 이사를 가야할지가 문제였다.

남편과 함께 지역 도서관을 찾아 인근 고등학교의 진학실적 기록 등을 꼼꼼히 살폈다. 이 씨는 3년간 살아 정이 든 아나폴리스를 떠나 뉴욕 주 웨스트체스터 카운티로 이사하기로 결정했다.

이 씨가 점찍은 학교는 웨스트체스터 카운티 스카스데일에 있는 한 공립고등학교. 수업료가 비싼 사립고는 형편상 고려 대상에서 제외했다. 아이비리그 입학에 유리한 AP(대학과목 선이수제)제도를 잘 갖췄을 뿐 아니라, 우수한 교사진과 경험 많은 입학 상담관을 두고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미국에서는 고교의 대학진학 실적 등을 상세히 공개하기 때문에 부모의 선택폭이 넓은 편입니다. 한국에선 아쉬운 대목이죠.”

물가가 비싼 뉴욕으로 이사해 생활비가 갑절로 뛰었지만 아이의 미래를 위한 투자라는 생각에 무한 절약으로 견뎌냈다. 아이의 신발이 작아졌는데도 새 신발을 사주지 못해 눈물을 흘린 날도 있었다.

이 씨의 노력은 사교육 한 번 받지 않고 하버드와 MIT에 차례로 입학해 장학금을 받으며 학교를 다닌 희라, 희원, 희민 삼남매에 의해 보상을 받을 수 있었다.

○ 조기유학, 일찍 보낸다고 능사 아냐

이 씨는 겁 없이 미국으로 떠나 삼남매를 미국 명문대에 입학시켰지만 ‘무조건 보내고 보자’는 식의 조기유학에 우려를 갖고 있다.

그는 “연장자 공경, 규칙에 대한 존중, 성실함과 끈기 등 한국사회에서 어릴 적부터 배우는 덕목이 미국 사회에 적응하는 데 경쟁력이 된다”고 말한다. “너무 일찍 유학을 보내면 자립심이 부족해 적응에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고 현지 아이와 아무런 차이가 없게 돼 부모와의 관계가 소원해 질 우려도 있다”고 말했다.

이 씨 역시 우수한 한국인 학생이 교육 환경이 좋은 미국에서 재능을 펴는 것을 반대하자는 않는다. 기러기 아빠를 양산해 가족의 존립을 위태롭게 하면서 경제적으로 막대한 부담을 지는 조기유학이라면 신중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저희 가족은 삼남매가 차례로 대학 학업계획서를 쓸 때, 다섯 식구가 모여서 초고를 함께 읽고 부족한 점을 보완했지요. 아이들이 좋은 학교에 입학하고 대학원 공부까지 잘 마칠 수 있었던 것도 따지고 보면 늘 가족이 함께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이 씨가 생각하는 미국 현지 대학 입학을 위한 적절한 조기유학의 시기는 언제쯤일까?

“한국에서 영어만 확실히 준비해서 9학년(중학교 3학년) 전에 미국에 가면 늦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대학 지원시 제출하는 서류에도 9학년 성적부터 기록되고, 학교에서의 구체적인 대학 입학상담도 이때부터 시작되거든요.”

우정열 기자 passi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