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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학교에 마을도서관을]“유학 온 두 친구, 원서 걱정 끝”

입력 | 2008-10-14 03:00:00


“세계화 시대 영어책도 필요해요”

137호 산청 지리산고교

아프리카-중앙亞 학생 위해

영어책 300여 권 함께 전달

“외교관-금융가 꿈 이룰래요”

6일 경남 산청군 지리산 고등학교. 폐교된 초등학교의 낡은 교정에 새 터전을 꾸리고 서울 대구 부산 등 전국 각지에서 온 고교생 60여 명이 기숙 생활 중인 곳이다.

‘작은 도서관 만드는 사람들’(대표 김수연)과 본보, 네이버가 함께하는 ‘고향 학교에 마을 도서관을’의 137번째 학교마을도서관 개관식이 이날 이곳에서 열렸다. 고등학교에 학교마을 도서관이 개관한 것은 이번이 처음. 가난한 학생들의 교육 편차를 해소한다는 학교의 설립 목적과 전액 무료로 후원금을 받아 운영되는 특성 등을 고려해서 선정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는 특별한 유학생 소년 두 명을 만날 수 있었다. 서부 아프리카 코트디부아르에서 온 아몽 마티니엔(17) 군과 중앙아시아의 키르기스스탄에서 온 누르술탄 아블가슴 울루(15) 군이 그 주인공.

출신국가, 생김새, 나이도 다르지만 올 초에 입학한 이들은 고등학교 1학년 과정을 밟으며 한국 학생들과 어울려 생활하고 있다.

아몽 군과 술탄 군이 지구 반대편에서 한국의 작은 학교로 유학 온 것은 이곳의 독특한 운영방식 때문이다. 2003년 특성화고등학교로 개교할 당시부터 전교생 무료 교육을 실시하며 개발도상국 해외 학생들을 초청하고 있다. “가정형편이 어렵지만 우수한 아이들에게 교육 기회를 주는 것이 목표인 만큼 한국보다 환경이 열악한 곳의 아이들을 도울 필요가 있다”는 박해성 교장의 신념 때문이다. 아몽 군은 현지 한국 선교사의 소개로 연이 닿게 됐으며 술탄 군은 한국에서 공부 중인 사촌누나의 소개로 오게 됐다. 내년에는 잠비아, 콩고 등지의 학생들도 입학할 예정이다.

초창기에는 애로사항도 많았다. 열대지방에서 온 아몽 군은 추위를 많이 타는 반면 술탄 군은 더워서 고생이었다. 한 방을 쓰며 실내온도 조절을 놓고 신경전을 벌였다고 한다. 음식도 만만치 않았다. 한국 음식이라곤 난생 처음 먹은 아몽 군은 “한동안 우유와 스크램블 외에는 입에 대지 못했다”고 말했다. 술탄도 “무슬림이 먹지 못하는 고기가 많아 힘들었다”고 말했다.

주변의 각별한 배려 덕에 이들은 학교생활에 금방 적응했다. 아몽 군은 “다른 나라의 문화와 풍습, 언어를 배우며 견문을 넓히고 싶었지만 비용이 비싸 엄두도 못 냈다. 한국이 기회를 줬다”고 말했다. 술탄 군은 “한국처럼 강도 높게 공부하는 곳이 없는 것 같다. 하루가 정신없이 지나가기 때문에 평소엔 가족을 그리워할 시간도 부족할 지경”이라고 말했다. 두 소년은 오전 6시면 기상해 수업 준비를 하고 도서관에서 새벽까지 남아 못 다한 과제를 했다. 명절이나 주말이면 친구들과 교사들이 집으로 초대하기도 했으며 함께 여행을 다니기도 했다.

하지만 곧 새로운 난관에 부닥쳤다. 대부분의 수업이 영어로 진행됨에도 불구하고 도서관에 원서가 턱없이 부족했다. 아몽 군은 “아직 언어가 서툴기 때문에 한국어 영어 공부 등에 전념하고 있는데 도서관에는 원서가 30, 40권이 채 되지 않아 곤란했다”고 말했다. 이는 술탄 군의 경우도 마찬가지. “한국어를 잘 몰라 읽을 수 있는 책이 한정돼 있다. 도서관에 비치된 원서는 주로 고전작품밖에 없어서 좀 더 다양한 책을 접해보고 싶었지만 방법이 없었다”고 말했다.

이런 고민은 개관식에서 일반 책 2000여 권과 함께 영어책 300여 권이 전달됨으로써 가뿐해졌다. 해리포터, 나니아 연대기 등 청소년들이 읽을 만한 최신 문학작품 위주로 선정됐다. 한국에서 대학까지 진학하길 희망하고 있는 이들의 꿈은 각각 외교관과 금융전문가. 아몽 군은 “나라를 대표하는 인물이 돼 한국과의 관계에서 가교가 되고 싶다”고 말했으며 술탄 군은 “책을 많이 읽어서 한국어 영어에 모두 능통한 금융 전문가가 돼 받은 만큼 돌려주고 싶다”고 말했다.

이날 개관식에는 정성용 산청교육청 교육장, 전임수 산청교육청 장학사, 김민환 산청군의회 의장 등이 참석했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