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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마저 가버리면…” 이 비통함 하늘은 알까

입력 | 2008-08-21 02:50:00


은평구 나이트클럽 화재로 소방관 3명 순직

《“변재우 소방사가 불을 끄다가 다친 것 같다”는 한 통의 전화.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며 급하게 병원으로 가는 길에 택시 안에서 라디오 뉴스가 흘러나왔다. “20일 새벽 서울 은평구 대조동의 한 나이트클럽에서 화재가 발생해 진화하던 소방관 3명이 숨졌다”는 뉴스를 듣는 순간 최매자(67·여) 씨의 손은 떨리기 시작했다. ‘은평구는 아들이 근무하는 곳인데…설마 우리 아들이…아닐 거야, 아닐 거야.’ 다른 직장을 다니다 지난해 서른이 넘은 나이에 시작한 소방관 생활. 휴일이 따로 없는 힘든 근무 탓에 늘 피곤해하면서도 위암 수술을 받았던 어머니를 항상 챙기던 착한 아들. 전날 아침 여느 때처럼 “잘 다녀오겠다”며 집을 나섰던 하나뿐인 아들. 최 씨는 ‘숨진 3명 가운데 내 아들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작은 손가방을 손에 꽉 쥔 채 20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동 세브란스병원에 도착한 최 씨는 그만 주저앉고 말았다.》

변 소방사- 작년 여동생 앞세우고 암투병 어머니 홀로 남겨

김 소방장- 비번날엔 아내 피자가게 돕던 자상한 남편-아빠

조 소방장- 형도 소방관… 휴일 함께 하려 근무 바꿨다 참변

○ 나이트클럽 화재 진화 중 소방관 3명 사망

대조동의 한 나이트클럽에서 화재가 발생한 것은 이날 오전 5시 25분경.

화재 현장에 가장 먼저 도착한 이는 은평소방서 녹천119안전센터 소속 조기현(45) 소방장, 김규재(41) 소방장, 변재우(34) 소방사 등 3명이었다.

선착대로 화재 현장에 진입한 3명의 소방관이 무대 오른쪽 부근에서 불길을 잡고 있던 중 갑자기 지붕이 무너져 내렸다. 뒤이어 천장에 매달려 있던 무대 조명이 떨어졌고, 조 소방장과 김 소방장은 조명과 건물 더미에 그대로 깔렸다.

변 소방사는 간신히 피해 무대 옆쪽에 있던 방으로 들어갔지만 무너진 잔해 때문에 빠져나오지는 못했다.

오전 7시 힘들게 진화 작업을 마친 동료 소방관들이 세 사람을 구조했지만 이들은 결국 숨을 거뒀다.

소방방재청은 “1999년 한 층을 증축하면서 샌드위치 패널, 스티로폼 등이 주로 사용됐다”며 “지붕의 3분의 1가량이 화재로 무너졌는데 숨진 소방관들은 그 아래서 작업을 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화재 조사를 맡은 서울 은평경찰서 관계자는 “화재 원인은 정밀 감식이 끝나야 알 수 있다”며 “증축 인허가 과정, 정기 소방방재 점검 등에서 소홀한 부분이 있었는지도 조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 영상취재 : 박태근 동아닷컴 기자
▲ 영상취재 : 이진아 인턴기자

○ 안타까운 사연들

변 소방사의 가족은 원래 4명.

그러나 지난해 초 아버지가 지병으로 숨을 거두고, 다섯 살 터울의 여동생마저 몇 달 뒤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남편과 딸에 이어 아들까지 잃게 된 어머니 최 씨는 “너마저 가버리면 어떻게 하라고…”라며 오열했다.

동료 송형섭 소방관은 “재우가 개인적으로 힘든 일이 많았지만 늘 웃음을 잃지 않는 성실한 친구였다”며 “열심히 살아보려던 친구가 제대로 소방관의 꽃을 피워보지도 못하고 떠나버렸다”며 눈시울을 적셨다.

가장 먼저 빈소에 도착한 김 소방장의 부인 문모(40) 씨는 고개를 숙인 채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분향하지 마라. 우리 애 아빠 아직 보내면 안 된다. 안 된다…”

힘든 소방관 업무, 하지만 비번인 날에는 부인이 운영하는 피자가게의 일을 돕던 자상한 남편이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을 문 씨는 믿지 못한 듯 이렇게 되뇌었다.

희생자 중 유일한 기혼인 김 소방장은 13세, 11세 난 두 아들을 남겨둔 채 세상을 떠나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동료 최운학 소방관은 “김 선배는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의 ‘불잡이’였다”며 “사람이 갇혀 있으면 위험을 무릅쓰고 가장 먼저 뛰어들던 사람이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조 소방장은 형도 서울 동대문구에서 소방관으로 근무하는 형제 소방관. 조 소방장의 누나 조현옥(53) 씨는 “함께 소방관 일을 하며 휴일마다 형제가 낚시를 다닐 만큼 사이가 좋았다”며 “9월 1일 어머님 묘소에 벌초하러 가기로 했었는데…”라며 울먹였다.

조 소방장은 형과 휴일을 맞추기 위해 3주 전 ‘갑’부에서 ‘을’부로 근무조를 전환했다.

빈소를 찾은 동료 소방관들은 “본래 근무조였다면 참사를 피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한편 조 소방장과 김 소방장은 2001년 3월 6명의 소방관이 순직했던 ‘홍제동 화재사건’ 당시에도 현 은평소방서의 전신인 서부소방서 소속으로 현장에 출동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은평소방서의 한 관계자는 “7년 만에 동료를 다시 떠나보내게 됐다는 사실에 소방서 전체가 큰 충격에 빠져 있다”고 전했다.

李대통령 빈소 찾아 조문

이날 빈소에는 이명박 대통령 등을 비롯해 각계각층의 조문 행렬이 이어졌다.

이 대통령은 빈소에서 조의를 표한 뒤 “명예롭게 순직했다”면서 김 소방장의 자녀들을 찾아 등을 두드려 주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소방방재청은 순직 소방관들을 1계급 특진시키고 옥조근정훈장을 수여하는 한편 대전 국립현충원에 안장할 예정이다.

행정안전부와 서울시소방방재본부에 따르면 유가족들은 순직공무원 보상에 관한 법률에 따라 2억∼3억 원의 보상금과 월 100여만 원의 연금을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영결식은 22일 오전 9시 은평소방서에서 열린다.

한상준 기자 alwaysj@donga.com

신광영 기자 ne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