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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건축]‘배트맨’의 고담시

입력 | 2008-07-03 03:00:00


무질서한 개발의 추함 나타내려

이질적 건축스타일 마구 뒤섞어

배트맨보다 인기 많은 악당 ‘조커’가 19년 만에 스크린으로 돌아옵니다. 18일 미국에서 개봉하는 ‘다크 나이트’. 한국 개봉은 8월이네요.

1989년 팀 버튼 감독의 ‘배트맨’에서 그려진 고담시의 괴이한 풍경은 큰 화제를 모았습니다. 미심쩍은 영웅 배트맨의 음울한 이미지는 영국인 프로덕션 디자이너 안톤 퍼스트가 창조한 어두운 고담시에서 생명을 얻었습니다.

주인공 브루스 웨인의 그늘진 저택, 조커가 ‘웃음 약물’을 제조한 공장, 삐죽삐죽한 캔틸레버(외팔보)가 위협적으로 튀어나온 시가지 모습은 영화의 어둡고 불안한 분위기를 대변합니다.

배트맨과 조커가 마지막 대결을 펼친 종루 첨탑은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가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남긴 성가족 대성당을 참고한 것입니다. 퍼스트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가우디의 대성당에는 고딕과 아르누보 양식이 녹아 있다”며 “신이 인간을 버린 듯했던 중세 고딕의 분위기를 빌리고 싶었다”고 말했습니다.

무질서한 개발의 흔적이 추하게 뒤덮은 메트로폴리스를 만들기 위해 퍼스트는 이질적인 건축 스타일을 마구 뒤섞었습니다. 그는 일본의 다카마쓰 신, 미국의 루이스 설리번 등 유명 건축가 6명의 작품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밝혔습니다. 새까만 배트모빌과 전투기, 부메랑 등 무기도 퍼스트가 디자인했습니다. 이 영화로 퍼스트는 아카데미 미술감독상을 받았습니다.

우울하기 그지없는 고담시의 풍광은 퍼스트의 실제 삶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었나 봅니다. 그는 1991년 11월 로스앤젤레스의 8층 건물에서 뛰어내려 47세에 생을 마감했습니다. 당시 알코올과 약물 중독 치료를 받고 있었다고 합니다.

3년 뒤 속편 ‘배트맨 리턴스’의 프로덕션 디자인을 맡은 보 웰치는 퍼스트가 만든 그림에 별다른 변화를 주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조엘 슈마허 감독의 ‘배트맨 포에버’(1995년), ‘배트맨과 로빈’(1997년)의 바버라 링은 망측한 형광색 고담시를 내놓았습니다. 현대 표현주의양식을 내세웠지만 영화만큼 실망스럽고 어색한 모습이었습니다.

8년간 봉인됐다 재개된 프로젝트인 ‘배트맨 비긴스’의 프로덕션 디자이너 네이선 크롤리가 그린 고담시는 퍼스트의 고담시를 닮았습니다. 최근 공개된 ‘다크 나이트’ 예고편의 고담시도 다행히 별로 밝아지지 않은 것 같네요.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