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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갈피 속의 오늘]1918년 육상 여왕 블랑커르스쿤 출생

입력 | 2008-04-26 02:58:00


‘여자에게 중장거리는 무리이니 경기에서 제외하기로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결정…소렌스탐이 출산하자 선수생명이 끝났다고 언론이 보도…국가대표팀의 주부는 그만두고 집에 가라고 팬들은 아우성.’

1918년 4월 26일 네덜란드에서 태어난 그녀는 이런 일이 상상이 아니라 현실이던 시대를 살았다.

소녀는 펄펄 날았다. 테니스 수영 체조 스케이팅 펜싱 달리기…. 못하는 운동이 없었다. 육상을 택했다. 네덜란드 팀에 세계적 수영선수가 있음을 고려했다.

스포츠에서 남녀 차별이 심하던 시절이었다. IOC는 800m 달리기가 여자에게 힘들다는 이유로 1928년 이후 종목에서 뺐다.

그녀는 17세 때 트랙에 처음 나섰다. 1년 뒤 베를린 올림픽(1936년)에서 400m 계주 5위, 높이뛰기 6위를 기록했다.

올림픽 무대에 다시 서기까지 12년이 걸렸다. 제2차 세계대전으로 1940, 1944년 대회가 취소됐다. 네덜란드 육상대표팀 코치였던 얀 블랑커르스와 1940년 결혼했다. 남편은 스포츠 대회에 여자가 참가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다가 15세 연하의 아내를 격려하기 시작했다.

첫아이가 1941년 태어났다. 네덜란드 언론은 운동선수로서 그녀의 경력이 다 끝났다고 떠들었다.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1946년 유럽선수권대회가 열렸다. 80m 허들과 400m 계주 우승. 몇 주 전에 둘째를 낳은 몸이었다.

런던 올림픽(1948년)을 앞두고 영국 육상대표팀 감독은 그녀를 무시했다. “너무 늙어서 성적을 내기 어렵다.” 집에서 두 아이를 돌봐야 한다고 말하는 국민도 많았다.

비가 와서 트랙이 질퍽질퍽한 날에 100m, 80m 허들에서 올림픽 신기록으로 우승했다. 200m, 400m 계주에서도 금메달.

여자 육상종목 9개에서 금메달 4개를 혼자 땄다. 한 번의 올림픽 대회에서 금메달 4개를 목에 건 첫 여자 선수가 됐다.

나이 서른, 두 아이의 엄마에게 ‘날아다니는 주부(Flying Housewife)’라는 별명이 붙었다. 올림픽 당시 셋째 아이를 임신 중이었음은 나중에 알았다.

기록이 이어졌다. 유럽 선수권대회 금메달 5개, 네덜란드 선수권대회 58회 우승, 세계 신기록 또는 타이기록 12개.

국제육상경기연맹(IAAF)은 1999년 총회에서 ‘20세기 최고의 남녀 육상선수’로 칼 루이스(미국)와 그녀를 꼽았다.

2004년 1월 25일, 세상을 떠났다. ‘남자의 다리를 가진 여왕(A Queen with men’s legs)’, 파니 블랑커르스쿤의 얘기다.

송상근 기자 songmo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