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세계경제 기상도(氣象圖)는 ‘잔뜩 찌푸림, 그리고 가끔 폭우’였다.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이 촉발한 금융시장 동요와 유가 및 곡물값 급등이 지구촌을 덮쳤다.
금융 불안의 진원지인 미국은 여전히 아슬아슬하다. 서브프라임 사태가 한 고비 넘겼다는 관측도 나오지만 단정하기는 이르다. 일부 외신은 이달 중순 발표될 미 대형 금융회사들의 1분기(1∼3월) 실적을 비관적으로 예상한다. 1일(현지 시간) 급등했던 미국 주가는 다음 날 벤 버냉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 경기침체 가능성을 시사하자 다시 하락했다.
‘잃어버린 10년’에서 벗어나 호황을 구가해온 일본 분위기도 밝지 않다. 엔화 강세와 국제유가 상승, 최대 수출시장인 미국 경기 침체에 따른 기업 실적 악화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이달 들어 사정이 다소 나아졌지만 며칠 전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최근 1년간 도쿄 증권거래소 1부의 시가총액이 150조 엔(약 1440조 원) 줄었다”면서 “캐나다 국내총생산(GDP)에 필적하는 가치가 사라졌다”고 전했다.
대외변수 영향이 큰 데다 자원 빈국(貧國)인 한국이 복합 악재의 안전지대일 수는 없다. 경상수지와 무역수지는 각각 3개월과 4개월 연속 적자를 면치 못했다. 각종 물가는 오르고 반도체 불황은 길어지고 있다.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도 낮아졌다.
하지만 좀 더 들여다보면 다른 흐름이 눈에 들어온다. 무엇보다 경제활동의 핵심 주체인 기업 분위기가 새 정부 출범 후 달라졌다. 이명박 정부가 ‘비즈니스 프렌들리’ 메시지를 시장(市場)에 분명히 전하면서 “이제는 한국에서도 기업 할 만하다”고 말하는 기업인이 적지 않다. 한 경제단체 임원은 “이런 대외환경에서 범(汎)좌파 세력이 다시 집권했다면 경제는 걷잡을 수 없이 나빠졌을 것”이라며 “정치가 경제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를 절감한다”고 했다.
경제정책과 기업 환경 측면에서는 이미 혁명적 변화가 시작됐다. 정권 초기의 시행착오와 미숙한 점도 없진 않다. 그러나 새 정부의 큰 정책 흐름은 민간 부문의 활력을 짓누르고 공공부문 철밥통만 키운 노무현 정부의 구조적 한계를 깨고 대한민국의 재도약을 가능하게 하는 쪽으로 가고 있다는 게 내 생각이다. 우리 사회의 주류(主流) 전문가집단과 언론이 그동안 ‘권력과의 불화(不和)’를 감수하며 일관되게 강조해온 방향이기도 하다.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줄고 기대감이 생기기 시작했다는 것은 일부 지표로도 확인된다. 객관적 여건은 어렵지만 올해 국내외 기업들의 투자는 증가세로 돌아섰다. 지난달 17일 1,570 선까지 밀렸던 코스피지수는 200포인트 가까이 올라 1,760 선을 다시 넘었다.
한국 경제는 숱한 위기와 도전을 헤치고 여기까지 왔다. 베스트셀러를 낸 어느 전문가조차 20년은 갈 것이라고 우려했던 좌파 정권이 잇단 정책 실패로 한계를 드러내면서 10년 만에 막을 내린 것은 아직 나라의 운(運)이 기울지 않았다는 의미인지도 모른다, 글로벌 경제를 뒤덮은 먹구름이 만만하진 않지만 경제 주체들이 ‘정권교체 효과’를 잘 활용한다면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끝이 보이지 않을 것 같던 터널을 빠져나온 지금 우리에겐 희망이 있다.
권순활 산업부장 shkw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