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 위축 → 소비 둔화 우려 속
미분양, 외환위기 수준 넘어서
《일자리가 없는 ‘사실상 백수’가 300만 명을 넘어섰고 전국의 미분양 아파트가 외환위기 이후 최대 수준으로 늘어나는 등 한국 경제의 주름살이 깊어지고 있다. 국제 유가의 최고가 행진이 이어지는 가운데 원-달러 환율도 급등(원화 가치는 하락)하고 있어 물가 상승세도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주가도 큰 폭으로 떨어지고 있다. 악순환을 거듭하고 있는 글로벌 금융시장의 불안이 국내 소비와 투자의 위축으로 연결돼 실물 경기가 후퇴하지 않을지 염려되는 상황이다. 》
○ 주식, 채권, 원화 가치 트리플 약세
13일 국내 금융시장이 요동친 것은 세계최대 사모(私募)펀드인 칼라일그룹의 관계사 칼라일캐피털이 파산 위기에 직면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데다 미국 뉴욕 증시가 급등한 지 하루 만에 하락했기 때문이다.
12일(현지 시간)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는 0.38%, 나스닥지수는 0.53% 하락했다. 전날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2000억 달러 유동성 공급 발표 하루 만에 뉴욕 증시가 하락한 것은 시장 참가자들이 이 조치가 신용 경색을 완화하기엔 미흡하다고 보고 있음을 보여준다.
여기에 런던 외환시장에서 엔-달러 환율이 달러당 100엔 선이 무너지자 아시아 지역 투자자들의 심리는 패닉(공황) 상태로 빠져들었다.
이날 서울 증시에서 외국인은 3989억 원을 순매도(매도금액에서 매입금액을 뺀 것)하며 자금 빼기에 나섰다. 채권 시장에서도 투매(마구 내다 파는 것)가 이뤄지며 채권 금리가 급등했다.
본국 역송금을 위한 주식 매도가 이어지면서 국내 외환시장에서는 달러화 수요가 높아져 환율 시장에까지 불똥이 튀었다.
전효찬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주가가 내리고 환율이 오르는 등 시장이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자 안전 자산에 투자하려는 심리가 강해지면서 외국인들이 매도에 나섰다”고 말했다.
교보증권 이종우 리서치센터장은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 사태와 경기 침체 불안감이 증폭되면서 주식과 채권, 환율이 서로 악영향을 미치면서 악순환에 빠져들고 있다”며 “코스피지수가 1,500 선 초반까지 밀릴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LG경제연구원 신민영 연구위원은 “자금 시장이 약세를 보이면 경제 주체들의 주머니 사정이 줄어들기도 하지만, 지갑을 열지 않게 하는 심리적 위축이 더 문제”라면서 “이런 심리가 소비 둔화로 이어져 실물 경기 위축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 수도권 미분양 한달새 48.6% 급증
13일 통계청에 따르면 비경제활동인구 가운데 ‘쉬었음’에 해당하는 사람은 올해 2월 현재 162만8000명으로 처음으로 160만 명을 넘어서며 관련 통계가 작성된 2003년 이후 월별 기준 사상 최대치를 보였다.
비경제활동인구란 15세가 넘은 사람 가운데 취업자도 실업자도 아닌 인구를 의미한다. 특히 비경제활동인구 중 가사를 돌보거나 아프거나 늙지도 않았는데도 취업할 생각이나 계획이 없을 경우 ‘쉬었음’으로 분류된다.
또 기업체 입사나 공무원 시험 등을 준비하는 ‘취업준비자’도 2월 현재 60만7000명으로 처음으로 60만 명을 돌파했다.
2월 현재 실업자 81만9000명에 그냥 쉬는 사람과 취업준비자를 합한 ‘사실상 백수’가 305만4000명에 이르는 셈이다. 이는 작년 2월의 297만1000명보다 8만3000명(2.8%) 증가한 것이다.
미분양 아파트가 늘어나면서 자금력이 취약한 중소 건설업체들의 연쇄 도산 우려도 커지고 있다.
13일 국토해양부에 따르면 올해 1월 말 현재 전국의 미분양 아파트가 12만3371채로 기존 최고치인 11만6433채(1998년 7월, 외환위기 당시)를 넘어섰다.
악성 미분양으로 분류되는 ‘준공 후 미분양’이 크게 늘고 주택 수요가 비교적 많은 수도권에서 미분양이 급증한 것은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준공 후 미분양은 지난해 12월 말 1만7395채에서 1월 말 2만2162채로 27.4%나 늘었다. 지방 미분양은 한 달 사이 4.1% 증가한 반면 수도권은 48.6%나 급증했다.
김상수 기자 ssoo@donga.com
이태훈 기자 jefflee@donga.com
신치영 기자 higgled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