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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허엽]유인촌 문화장관이 해야 할 일

입력 | 2008-03-12 02:59:00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2월 말 취임해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다. 이달 3일 종교 지도자를 예방하고 문화부 업무보고를 받은 뒤 7일 첫 유관기관 방문처로 태릉선수촌을 찾았다. 숭례문 복원 현장도 다녀왔다.

유 장관은 이명박 정부의 ‘첫’ 문화장관이다. 이 정부는 지난 좌파정권에 실망한 국민의 표 덕분에 탄생했다. 좌파정권은 함량이 모자라는 코드인사와 편향된 이념과 막말로 5년 내내 상처를 안겼다. 문화 부문도 좌파진영이 자리와 자금을 나눠먹으면서 산업적 예술적 창의적 동력을 잃어버렸다는 지적을 받는다. 노무현 정부의 첫 문화장관인 이창동 씨가 그 터를 닦았다. 이 장관 취임 이후 민예총과 노문모(노무현을 지지하는 문화예술인 모임) 출신들이 문화계 요직에 포진했다.

유 장관이 이를 모를 리 없다. 지난 정권 ‘문화권력’의 하나였던 영화진흥위원회의 김혜준 사무국장은 프레시안과의 인터뷰에서 “유 장관이 (영진위나 문화예술위원회 등) 위원회 체제에 대해 다소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요즘 영화계를 보면 유 장관을 ‘만만하게’ 보는 것 같다. 한 영화평론가는 “안정숙 영진위 위원장이 남편(원혜영 통합민주당 의원)의 선거운동을 돕기 위해 사퇴하려 하자, 이미 자기들(좌파 진영)끼리 차기 위원장을 추대해 운동하고 다니더라”며 “대선 뒤 (우파 진영을) 지켜보더니 이젠 ‘별거 아니다’라는 생각이 드는 모양”이라고 말했다. 대선 이후 잠시 긴장했지만 우파 진영의 움직임이 보이지 않자 다시 나섰다는 것이다. 유 장관이 취임 일성으로 “이념을 넘고, 좌와 우를 떠나야 한다”고 하자 박수를 보냈다는 말도 들린다.

문화권력의 간판인 문화예술위는 말할 나위도 없다. 민예총 이사를 지낸 김정헌 위원장은 지난해 9월 임기 도중 물러난 김병익 위원장의 후임이다. 정권 말기 민예총 출신 위원들이 김병익 위원장의 퇴진을 요구하자 “정권이 바뀌어도 문화권력을 유지하려 한다”는 말이 나왔다. 유 장관의 한 측근은 “장관 취임 전에 김 위원장 등 여러 명이 찾아왔다”고 전했다. 그 사이 민예총은 두 차례 토론회로 이 정부에서의 활동전략을 다지기도 했다.

유 장관은 보수 진영에 대해서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이인호 KAIST 석좌교수가 공동대표인 건국60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는 지난 정권이 치욕의 역사로 폄훼했던 대한민국의 건국을 민족사적 성취로 다시 일으키는 사업을 벌이고 있다. 집행위원장 김영호 성신여대 교수는 “대한민국의 건국은 기적 같다”며 “어느 강대국도 대한민국의 건국을 원하지 않았던 상황을 우리 스스로 헤쳐 나갔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 일을 문화부와 상의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대한민국 건국에 자긍심을 불어넣는 것이야말로 문화부의 일인데도.

유 장관은 문화와 체육과 관광을 총괄하는 부처의 수장으로 24시간이 모자랄 것이다. 그러나 그 많은 일 가운데 이 정부의 ‘첫’ 문화장관이 할 일을 추슬러야 한다. 이념에 뒤틀린 문화 정책과 대한민국의 철학을 바로 세우는 일이 그것이다. 문화와 철학을 지키지 않고는 시장도 실용도 지킬 수 없지 않은가. 정권 교체를 갈망한 이들을 ‘문화’로 섬기는 게 무엇인지 유 장관은 헤아려야 한다.

허엽 문화부장 he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