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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과 자연의 경계를 넘어 30선]최종 이론의 꿈

입력 | 2008-03-06 03:00:00


《“어떤 사람이 직접 관측되지 않는 어떤 것에 대해서 이야기하기를 거부한다면 그는 양자장론이나 대칭성의 원리나 일반적인 자연법칙을 진지하게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다. 철학자들과 사회학자들과 인류학자들이 연구할 수 있는 것은 과학자들이 실제로 행하고 있는 실질적 행위이며 이 행위는 추론의 규칙들만으로 간단하게 기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과학적 이론이 언젠가 파악되기를 희망하기는 하지만 아직 파악하기 어려운 목표로 존재한다는 것을 직접 경험했기 때문에 이러한 이론의 실재성을 확신하는 것이다.”》

“가이사(카이사르)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바치라”는 성서 말씀이 있다. 세속 정치와 종교는 구분해야 한다는 것이다.

같은 논리로 “과학은 과학자에게, 철학은 철학자에게 맡기라”는 말도 통할까. 인문학과 자연과학을 넘나드는 통섭(統攝)이 시대정신인 오늘날 불가능한 일이다. 우리는 철학 없는 과학의 비윤리성과 과학 없는 철학의 허무함을 잘 알고 있다.

현대 입자물리학과 이론물리학의 근간이 되는 표준모형을 발표했고 1979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세계적인 물리학자인 저자가 이 책을 쓰게 된 것도 이 때문이다.

와인버그 교수는 1992년 이 책을 썼다. 최종 이론이란 모든 자연법칙을 설명할 수 있는 하나의 원리를 말한다. 당시 미국 과학계에선 ‘최종 이론’을 실험할 초전도 초대형 충돌기 사업을 둘러싸고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다.

정치인, 종교인, 철학자들은 실험으로 관측할 수 없는 이론의 증명을 위해 80억 달러짜리 초대형 충돌기를 만들 수 없다고 주장했다. 저자는 이들의 공격이 과학을 바라보는 근본적인 관점의 차이 때문에 생겨났다고 생각했다.

그 근본적인 차이는 이렇다. 최종 이론은 소립자처럼 아주 작은 세계에서 존재하기 때문에 자연 현상을 설명하는 원리지만 우리 일상의 용어나 상식에서 크게 벗어나 있다. 게다가 눈에 보이지도 않는다.

실증주의를 바탕으로 한 철학자들에게 이런 최종 이론은 진리와 거리가 멀었다. 눈으로 관측되지 않고 실험으로 검증할 수 없는 것들을 과학이라 부를 수 없다는 것이다. “공간과 시간은 우리 외부에 존재하는 실재의 일부분이 아니다. 물체와 사건을 연관시킬 수 있게 해 주는 마음속의 선험구조”라고 말한 칸트의 말처럼 확인할 수 없는 것을 존재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반면 저자는 자연의 근본 법칙은 사람이 인식하든 인식하지 못하든 길거리에 널린 돌멩이처럼 실제로 존재한다는 ‘실재론’을 바탕으로 철학과 종교를 비판한다. 또 실증주의 같은 철학이 한때 과학의 발전에 도움을 줬지만 이제 과학의 발전을 방해하는 존재라고 말한다.

이 책은 최종 이론이라는 최신의 물리학 이론을 둘러싼 과학과 철학의 첨예한 대립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어렵더라도 꼭 읽어볼 만하다. 과학과 철학의 대립은 역설적으로 과학과 철학이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물리학도가 아니라도 최종 이론이 무엇인지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한 것도 이 책의 장점이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