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신청서는 받지만 심사는 당규 따라 진행”
‘금고형 이상만 제한’ 최고위원회의 요청 거부
朴전대표측 “애매한 결론… 당규 개정 불가피”
소장파 “특정인 구제하려 당규 고치나” 반발
한나라당이 총선 공천을 둘러싼 갈등과 관련해 31일 밤늦게까지 긴박하게 움직였다. 강재섭 대표가 이날 심야에 공천 갈등에 대한 견해를 표명하겠다며 기자들을 경기 성남시 분당구 자택으로 불렀다. 강 대표가 강경한 의견을 표명할 것이라는 설이 돌자 임태희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 비서실장과 박재완 의원이 이날 밤 12시경 부랴부랴 강 대표 집을 찾아와 장시간 설득했다.
이에 앞서 공천심사위원회는 이날 부패 비리 연루자의 공천 신청 자격 박탈을 규정한 당규의 적용 문제를 놓고 공천 신청자의 자격 여부를 공천심사위원회에서 심의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박근혜 전 대표 측은 “달라진 것이 없다. 당규를 개정하지 않고는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며 반발하고 있다.
○ 공심위 “공천 신청서는 받아 주겠다”
정종복 공심위 간사는 이날 공심위 회의 직후 브리핑에서 “공직후보자추천규정 3조 2항에 따라 공천 신청 자격이 있는지 여부가 문제되는 자는 그 자격 여부를 별도로 심사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당규를 엄격히 적용해 부패 비리 연루자의 공천 신청 자격 자체를 불허하기로 한 1월 29일 결정보다 다소 유연해진 것. 문제가 된 박 전 대표 측의 좌장인 김무성 최고위원 등은 공천 신청서를 낼 수 있게 됐다. 일종의 ‘가접수’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에 앞서 한나라당 최고위원회는 이날 긴급회의를 소집해 금고 이상의 형을 받은 경우만 공천 신청 자격을 제한하고 공천 신청을 받아 개별 심사해 접수 여부를 판단해 달라고 공심위에 주문했다. 정 간사는 “공심위가 최고위원회 의견을 참조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공천 신청 자격이 있는지를 확정할 때는 다시 현 당규를 따르기로 해 신청을 하더라도 공천을 받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최고위원회 주문 중 ‘금고형 이상만 제한해 달라’는 요청은 거부한 것이다.
안강민 공심위원장은 31일 회의 직후 “당규가 너무 명확하게 돼 있다. 당규 개정 없이 문제 해결이 어렵다”는 견해를 당 지도부에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 공심위원은 통화에서 “공심위는 당규의 벽에 막혀 있다. 최고위원회의가 당규를 개정하든지, 현 당규대로 공천 신청을 불허하든지 결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 박 전 대표 측 “당규 개정해야”
박 전 대표 측은 이날 공심위 회의 결과에 큰 기대를 걸었다. 당 최고위원들이 한목소리로 공심위에 ‘유연한 당규 적용’을 주문했기 때문에 해법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던 것이다.
하지만 박 전 대표 측은 공심위가 기대에 못 미치는 결정을 하자 당황하는 분위기다.
박 전 대표 측의 한 의원은 “서류를 접수한 뒤에 당규를 근거로 공천을 주지 않을 수도 있는 것 아니냐. 공심위가 애매한 결론을 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박 전 대표 측 의원들은 이날도 국회도서관에서 모여 ‘행동 통일’을 다짐했다. 하지만 이들 의원 중 일부에서는 “실제로 탈당까지 하기에는 명분이 약한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29일 공심위 결정에 반발해 당무를 거부해 온 강재섭 대표도 측근에게 답답한 심경을 토로한 것으로 전해졌다. 강 대표는 이날 서울 모처에서 칩거하며 당규 개정 등 해법을 찾기 위해 고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 소장파, 당직자는 ‘부글부글’
당내 소장파와 하위 당직자들은 이번 당규 적용 문제를 놓고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한 당직자는 “필요에 따라 멋대로 당규를 어겨 가며 특정인을 구제해 주면 당 꼴은 뭐가 되겠느냐”며 “그렇다고 당내 화합에 역행한다고 할까봐 대놓고 비판도 못해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수도권의 한 재선 의원은 박 전 대표 측을 겨냥해 “말로는 객관적 기준에 따라 투명하게 공천하면 된다고 해 놓고 이제 와서 ‘정치는 신의가 중요하다’며 당규는 헌신짝처럼 버려도 되느냐”고 따졌다.
한 국장급 당직자는 당규 개정과 관련해 “국민의 시선을 외면한 채 위인설관(爲人設官)보다 더 나쁜 위인설법(爲人設法)을 시도하고 있다”며 “이러니까 ‘웰빙당’ 소리를 듣는 것”이라고 목청을 높였다.
한 초선 의원은 “현 당규 조항은 지난해 9월 통과되기 전 일부 당직자가 너무 현실성이 없다고 지적했음에도 불구하고 당 지도부가 ‘정권 교체를 위해 환골탈태해야 한다’며 강하게 밀어붙인 것”이라며 “당규를 다시 개정하면 당이 큰 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박정훈 기자 sunshade@donga.com
이종훈 기자 taylor5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