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무총리 내정설이 나도는 한승수 유엔기후변화 특사가 24일 기후변화포럼 특별강연을 하기 위해 국회 의원회관으로 들어서면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전영한 기자
《새 정부의 초대 국무총리 후보로 사실상 내정된 것으로 알려진 한승수 유엔기후변화 특사가 24일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과 만나 국정 운영 구상에 관한 의견을 교환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그 행보에 정치권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또 다른 총리 후보로 거론돼 온 한승주 전 외무부 장관은 24일 이 당선인의 특사단으로 방미 도중 일정을 앞당겨 귀국했고, 이경숙 대통령직인수위원장은 이날 정권 교체기 공직자들의 군기 잡기를 위한 고삐를 죄고 나섰다.》
말아끼는 한승수… 손으론 ‘위민진정’
한승수 특사는 이날 총리직과 관련된 거듭된 질문에 “유구무언(有口無言)”이라며 극도로 말을 아꼈다.
한 특사는 이날 서울 시내 모처에서 이 당선인과 면담해 새 정부의 국정 운영 방향에 관해 의견을 교환한 것으로 알려져 총리 내정자 발표가 임박했다는 관측을 낳게 했다.
그는 이날 오후 국회 의원회관 소회의실에서 열린 ‘기후포럼’ 특강에 기자들이 대거 찾아오자 “유엔기후변화 특사 자격으로 왔기 때문에 다른 문제에 대해 얘기할 수 없다. 양해해 달라”면서 입을 굳게 다물었다.
▲ 영상제공 : 인수위, 편집 : 동아일보 사진부 이종승 기자
기자들이 ‘(검증에 필요한) 개인정보제공 동의서를 받았는가’ ‘총리 제의가 온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쏟아냈지만 한 특사는 손사래를 치면서 끝내 대답을 하지 않았다.
한 특사의 특강이 끝난 뒤 포럼에 참석했던 김성곤 국회 국방위원장도 궁금한 나머지 “만약 국정을 맡으신다면 기후변화와 관련해 정부가 무엇을 해야 하느냐”라며 우회적으로 물어봤지만 한 특사는 “국내 문제에 대해서는 얘기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 특사는 특강 시작 전 방명록에 ‘위민진정(爲民盡政·국민을 위하는 정치에 진력하라는 뜻)’이라고 적어 묘한 해석을 낳았다. 국내 정치 문제에 대해 일절 말은 하지 않겠다고 하면서 실제로 국정에 임하는 마음가짐을 담은 것 아니냐는 것이었다.
이에 한 특사는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는 말이 있지 않느냐. 백성을 위하는 게 정치고, 여기는 국회니까 정치에 진력해 백성을 위하는 정치를 해달라고 부탁한 것”이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한 특사는 이날 특강에서 “기후변화는 환경문제의 범위를 넘어 지속적 개발이나 인간 안보, 더 나아가 국제 안보의 문제로 확대돼 금세기 세계적으로 가장 중요한 이슈”라고 말했다.
한 특사는 최근 자택을 찾은 본보 기자에게 “나는 다양한 분야의 경험을 했는 데다 병역 재산 등의 검증에서 특별히 문제가 될 만한 것도 없다”고 말한 바 있다.
주호영 당선인 대변인은 이날 저녁 “내일(25일)자에 한승수 총리 내정이라고 쓰면 오보가 될 수 있다”며 언론에 ‘속도 조절’을 주문했으나 이 당선인 주변에서는 “사실상 단수 후보로 압축됐다”는 얘기가 꼬리를 물었다.
윤종구 기자 jkmas@donga.com
▼‘급거 귀국’ 한승주 ▼
이 당선인이 파견한 대미 특사단에 포함됐던 한승주(사진) 전 장관은 24일(현지 시간) 귀국길에 올라 궁금증을 자아냈다.
한 전 장관은 23일 오후 특사단과 로버트 게이츠 미 국방 장관 면담까지 참석한 뒤 오찬 간담회부터 오후 일정에 전혀 참석하지 않았고, 특사단의 주요 일정이었던 딕 체니 부통령과의 면담에도 불참했다.
한 전 장관은 24일 오후 워싱턴 외곽지역에서 열린 만찬에 참석해 여운이 담긴 말을 남겼다. 건배사를 하면서 “제가 참여정부에서 첫 번째 주미 대사를 지냈는데 지금 이 자리에 와 있다”고 감회에 담긴 말을 한 것.
그러나 그는 급거 귀국 이유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그냥 학교에 정해진 일이 있다”고 대답했다. 그는 이어 ‘총리로 내정되신 거냐’는 질문에 “전혀 아니다. I swear(맹세한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제 (고대) 총장서리 임기가 1월 31일까지인데 (방미할 때) 너무 무리하게 와서 임기 끝나기 전까지 해야 할 일들이 많다. 교수도 충원해야 하고 학장을 임명할 일도 있다”고 귀국 배경을 설명했다.
워싱턴=동정민 기자 ditto@donga.com
▼ ‘군기 잡는’ 이경숙 ▼
이경숙(사진) 인수위원장은 이날 “정권 교체기에는 상당한 정신적 해이가 있어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그는 “신구(新舊) 정권이라는 것은 사실상 하나의 정권 교체에 불과하지 국민이 달라지는 것도 아니고 대한민국이 바뀌는 것도 아니다”면서 “나라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정권 교체가 원활하게 돼 국민이 불안해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권 교체가 무난히 됐으면 좋겠다는 희망과 함께 정부 조직 개편안이 국회에서 잘 통과돼야 한다는 희망을 강조한 것이다.
그는 특히 “당선인이 ‘장관 없이 가게 되지 않을까 하는 어려움이 염려된다’는 말을 했는데 이는 새 정부의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문제로, 심각한 경제상황을 극복하는 데 있어 리더십의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염려된다”고 강조했다.
이 위원장은 국무총리 또는 교육인적자원부 장관 후보로 적극 검토됐으나 총리든 각료든 이번에는 아무 공직도 맡지 않고 8월에 끝나는 숙명여대 총장직 임기를 마치고 싶다는 의사를 이 당선인에게 분명히 밝힌 상태다.
박성원 기자 swp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