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나라불안” EU가입 유보
러시아, 옛인연 외면 유가올려
5일 대통령선거에서 재선한 미하일 사카슈빌리 그루지야 대통령은 7일 CNN에 출연해 “유럽은 그루지야를 등지지 않았다. 러시아와도 관계를 개선하겠다”고 말했다. 지치고 쉰 목소리였지만 자신감을 보이려 애쓰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서유럽 국가들은 지난해 12월 야당의 거리 집회를 무력으로 탄압한 ‘장미 혁명’ 주역에게 여전히 냉담한 표정이다. 2004년 대선 당시 사카슈빌리 대통령이 반(反)러시아, 친(親)유럽을 외쳤을 때 유럽 국가들이 보인 지지는 오래전 의심으로 돌아섰다.
이번 대선에서 그루지야 주민 61%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을 찬성했으나 유럽이 나토나 유럽연합(EU) 가입을 도와줄 조짐은 없었다.
그루지야처럼 옛 소련에서 분리 독립한 뒤 반러시아를 표방했지만 유럽으로부터도 천덕꾸러기 대접을 받아 ‘회색지대’가 된 러시아 주변국이 늘고 있다고 러시아 언론들이 전했다.
2004년 오렌지혁명을 거친 우크라이나, 2005년 레몬혁명 소용돌이에 빠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등은 러시아와 유럽 양 진영에서 냉대를 받는 대표적 국가들.
이 나라들은 1991년 12월 소련이 붕괴될 당시 동유럽과 중앙아시아 중간의 전략적 요충지로 각광을 받았다. 서방과 러시아 양쪽에서 이득을 취하는 ‘양다리 걸치기’ 외교도 통했다. 그러나 이라크전쟁에 발목이 잡힌 미국의 영향력이 점차 떨어지는 사이 고유가에 힘입은 러시아의 입김이 거세지면서 사정은 달라졌다.
우크라이나는 친서방 오렌지 연대 출범 이후 최근 4년간 EU 편입을 기다려 왔다. 그러나 유럽 국가들은 “아직 준비가 덜 됐다”는 신호를 계속 보내고 있다.
지리적으로 유럽보다 러시아에 가까운 키르기스스탄과 타지키스탄은 2000년대 초반 유치한 미군 기지를 철수시키고 다시 친러시아로 기울었다. 그러나 러시아는 이들 국가에 대해 에너지와 원자재 가격을 인상하며 냉정한 시장 논리로 대응하고 있다.
회색지대에 들어간 국가들은 자원 빈국이면서 러시아에 대한 의존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이 공통점이다. 우크라이나 경제의 70%는 러시아의 영향권에 놓여 있다.
우크라이나 제1야당인 지역당은 러시아산 원유와 가스로 먹고사는 동부 도네츠크 지대를 기반으로 오렌지 연대의 대외 정책에 브레이크를 걸고 있다. 오렌지연대 세력이 친서방을 목청껏 외쳐도 서유럽의 시각에서는 ‘민주주의 경험이 부족하고 경제가 안정되지 않은 나라’로 비칠 뿐이다.
그루지야는 러시아의 포도주 수입 금지 조치에 휘청거릴 정도로 경제가 허약하다. 키르기스스탄과 타지키스탄도 국민총생산이 북한보다는 조금 낫지만 세계 최하위권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모스크바=정위용 특파원 viyonz@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