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전대표 “시기 안늦춘다 말해”
단독 면담내용 이례적으로 공개
《한나라당의 올해 4월 총선 공천 시기를 놓고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의 측근들이 ‘2월 말 또는 3월 초로 공천을 늦춰야 한다’고 주장하고 박근혜 전 대표 측이 “미룰 수 없다”고 맞서면서 불거진 이번 논란은 지난해 12월 29일 이 당선인과 박 전 대표의 회동 이후 오히려 증폭되는 양상이다.》
특히 이 당선인 측이 ‘이-박’ 비공개 회동에서 “이 당선인이 공천을 미루지 않겠다고 말했다”는 박 전 대표 측의 주장을 부인하자 31일에는 박 전 대표가 이례적으로 측근을 통해 대화 내용을 공개하면서 양측 간 갈등 양상으로 번질 조짐까지 보이고 있다.
▽엇갈린 주장=지난달 이방호 사무총장의 공천 연기 발언 이후 양측 간 공천 시기를 놓고 논란이 불거지자 박 전 대표는 이 당선인과의 비공개 회동에서 이 문제를 정면으로 거론했다고 한다. ‘공천이 늦어지면 유권자들에게 심사 기준이나 적격 여부 등을 알릴 시간이 적어 오만한 모습으로 비칠 수 있다’는 논리였다.
박 전 대표는 이날 회동 후 측근들과의 만찬에서 “(이 당선인이) 공천 시기를 미루지 않겠다고 했다”며 대화 내용을 전했다.
하지만 30일 주호영 당선인 대변인은 “공천 시기 문제는 논의되지 않았다. 당장 중요한 인수위 활동이 자리가 잡히면 당헌 당규대로 공천을 하자는 취지로 당선인이 말했다”며 박 전 대표 측 주장을 부인했다.
그러자 박 전 대표는 31일 이정현 전 대변인을 통해 “이 당선인과의 회동에서 공천문제에 대해 이야기가 오고 갔다. 특히 공천 시기를 늦추지 않겠다는 대화가 있었다”고 밝혔다.
한나라당의 한 당직자는 “박 전 대표의 스타일을 감안할 때 비공개 회동에서 나눈 대화 내용을 공개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라며 “박 전 대표가 측근 의원들이 숙청 대상이 될까 봐 큰 부담을 느끼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 당선인 측의 한 측근은 “당시 회동에서 이 당선인은 ‘공천 문제는 당에 맡기자’는 취지의 말만 했다고 들었다”며 “박 전 대표 측이 논의된 것과 다른 말을 하고 있어 의아하다”고 말했다.
한편 강재섭 대표는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공천은 당 지도부와 공천심사위원회가 딱 잡고 할 것인데 다른 사람들이 공천을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웃기는 일”이라며 “1월 10일쯤 총선기획단을 구성해 공천심사위 구성 문제를 논의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강 대표 뜻대로 공천이 진행될 경우 이르면 2월 말, 늦어도 3월 초에는 공천 결과가 발표될 것으로 보인다.
▽2004년 총선 때는?=2004년 총선에서 한나라당은 2003년 12월 29일 공천심사위를 구성해 2004년 1월 11일부터 후보를 공모했다. 이후 서류심사, 자격심사를 통해 1월 말부터 일부 지역의 잠정 공천 결과가 나오기 시작했다. 경합지역의 경우 2월부터 본격적인 심사와 경선을 거쳐 3월 말 최종 결과가 발표됐다. 지난 총선에서 야당이었던 한나라당은 개혁 공천으로 바람을 일으키겠다는 전략으로 비교적 일찍 총선을 준비했다.
반면 올해 총선은 10년 만의 정권 교체에 따른 정권 인계인수 작업과 맞물려 공천 시기를 단순히 날짜로만 비교하기는 어렵다. 한나라당의 한 당직자는 “상당수의 당직자가 인수위에 참여하고 있고, 현실적으로 공천보다는 정권 인수에 치중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공천 연기가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반면 박 전 대표 측은 공천이 3월 초까지 늦어질 경우 ‘공천을 통한 숙청’이 이뤄지더라도 대안을 찾을 시간 여유가 없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박 전 대표 측 인사는 “경선 이후 이 당선인 측근들의 독선적인 행태를 감안하면 박 전 대표 측 인사가 공천에 희생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는 것 아니냐”고 우려했다.
박정훈 기자 sunshade@donga.com
김현수 기자 kimh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