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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갈피 속의 오늘]1988년 팬암 항공기 폭파사건

입력 | 2007-12-21 02:58:00


오후 7시 스코틀랜드 남단의 로커비 마을 상공.

한 시간 전 런던 히스로 공항을 출발한 미국 팬암 항공 소속 보잉 747기가 뉴욕을 향하고 있었다.

‘쾅-’ 갑자기 거대한 폭발음이 울렸다.

불길이 치솟으며 어둑어둑한 하늘에 번졌다. 초대형 여객기는 그 속에서 형체를 감췄다.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두고 평온하기만 했던 마을은 일순 정지된 듯했다. 뒤이어 아비규환의 비명과 공포가 엉켰다.

여객기의 거대한 파편이 마을 곳곳의 농장과 가옥을 덮쳤다. 부상자가 속출했고 11명의 주민은 목숨을 잃었다.

비행기에 몸을 실었던 259명은 공중에서 비명(非命)에 사라졌다.

1988년 12월 21일 발생한 ‘팬암 항공기 폭파사건’이다.

270명의 목숨을 앗아간 이날 참사는 최악의 항공기 사고로 꼽힌다. 동시에 뉴테러리즘의 시발(始發)로 불리기도 한다.

기존의 테러리즘은 정치적 명분과 대중의 지지를 중요시 했다. 이 때문에 테러 단체는 스스로 범행 사실을 밝히고 동기를 분명히 했다.

하지만 팬암 사건은 달랐다. 무차별적 살상을 노린 데다 범행 주체가 몸을 숨겼다. 테러리스트가 나서지 않은 첫 테러였다.

당장 미·영 합동 수사팀이 꾸려졌다. 3년간 50개국 1만4000여 명을 심문한 수사팀은 1991년 리비아를 배후로 지목했다. 폭발 현장에서 발견된 라디오 카세트와 타이머 장치 파편이 리비아 정보요원들의 것과 일치한다는 조사 결과도 나왔다.

그때부터 미·영과 리비아 정부 간의 끈질긴 줄다리기가 시작됐다. 미·영 정부는 용의자를 내놓으라고 요구했지만 리비아는 거부했다.

유엔안보리는 1992년부터 리비아에 대해 민간 항공기 운항 금지, 해외 자산 동결, 정유 관련 장비 판매 금지, 항공기 및 무기 수출 금지 등의 제재를 취했다.

이 같은 경제제재로 리비아는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실업사태와 치솟는 인플레이션 탓에 곳곳에서 봉기가 일어났다.

숨통이 막힌 리비아는 결국 백기를 들었다. 제3국에서 재판을 진행한다는 조건으로 1999년 용의자 2명의 신병을 인도했고, 2002년에는 경제제재를 해제한다는 조건으로 유족 한 가구당 1000만 달러(약 125억 원)를 지급하기로 합의했다.

10여 년 만에 일단락된 팬암 사건은 경제제재에 호되게 당한 리비아가 2003년 대량살상무기 포기 선언을 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강혜승 기자 fined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