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문학예술]삶을 다시 사랑할거야… ‘꾸르제뜨 이야기’

입력 | 2007-12-01 03:02:00


◇ 꾸르제뜨 이야기/질 파리 지음·성귀수 옮김/412쪽·1만2000원·열림원

“하늘은 말이다, 꾸르제뜨. 워낙 어마어마하게 커서 그 아래 아옹다옹 살고 있는 우리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을 갖게 만든단다.” “삶이란 말이다, 저놈의 우중충한 하늘과 똑같단다. 재수 없으면 더러운 구름들이 싸대는 오줌줄기를 고스란히 뒤집어써야 하지.”

그래서 꾸르제뜨는 하늘에 총을 겨눴다. 호박덩이라는 뜻의 이름 때문에 놀림을 받고, 아빠가 바람나 가출해 버리고, 엄마가 신세한탄만 하면서 허송세월하는 건 다 하늘 때문이라는 생각에. 그런데… 기겁을 하고 총을 빼앗으려던 엄마에게 총이 발사돼 버렸다. 영화 같은 일.

아홉 살 난 아이의 인생은 끝났다고 생각됐다, 감화원에 들어가게 됐을 때.

질 파리(사진)는 소설가로 이름을 알렸을 때 다양한 이력으로 화제가 된 작가다. 웨이터, 약물검사원, 포장 기술자, 대리점 직원, 영화 단역 배우 등 별의별 이력 끝에 소설을 쓰게 됐다. ‘꾸르제뜨 이야기’는 문제아동 수용기관을 제집처럼 드나들면서 직접 관찰하고, 교육학 심리학의 자료를 찾아가면서 쓴 작품이다. 그렇다고 정보만 넘쳐나는 소설은 아니다. 작가는 부모와의 관계 맺기에 실패한 소년이 ‘감화원’이라는, 세상의 눈으로 보기엔 정상적이지 않은 곳에서 사람들과 관계를 맺어 나가는 과정을 펼쳐 보인다.

아흐메드는 매일 아침 침대에 오줌을 싸놓고는 아빠가 언제 자길 보러 오느냐며 떼를 쓴다. 허세 부리는 데 능한 시몽은 아흐메드와 꾸르제뜨를 싸잡아 못살게 굴기 일쑤다. 그렇지만 당찬 꾸르제뜨는 번번이 시몽한테 반격을 가한다. 소식 없는 엄마를 기다리며 엄마가 보낸 우편엽서를 너덜너덜해지도록 갖고 다니는 쥐쥐브, 부모에게 맞았듯 사람들한테 맞을까 늘 겁을 먹는 수줍음 많고 여린 알리스, 일찍이 부모를 여읜 뒤 이모에게 구박을 받고 자랐는데도 기죽지 않고 활기 찬 카미유….

이 이야기의 서사는 독특하다. 충격적인 사건을 처음에 배치해 독자들을 놀라게 한 뒤, 감화원에서의 잔잔한 생활을 아기자기하게 전개한다. 별다른 사건 없이 고만고만한 하루하루지만 감화원에서 일어나는 에피소드는 유머러스하면서도 따뜻하다. 저마다 개성적인 인물들과 부대끼면서 꾸르제뜨가 마음의 상처를 치유해 나가는 과정은, 처음의 사건에 경악한 독자들이 아이들의 소소한 생활을 따라 읽어가면서 마음을 위무받는 과정과 정확하게 겹쳐진다.

‘꾸르제뜨 이야기’는 아홉 살 난 아이의 성장소설이지만, 그 이야기를 읽는 사람들에게 옆에 있는 사람들의 소중함을 일깨운다. 혼자서만 놀고 TV를 통해서만 세상을 알 수밖에 없었던 꾸르제뜨는 이야기의 끝 무렵 삶을 사랑할 줄 아는 소년이 된다. 하늘을 죽이고 싶어 했던 꾸르제뜨는 땅에서 더 큰 것을 발견하고는 더는 분노의 마음으로 하늘을 쳐다보지 않게 된다. 인생이 제대로 안 풀린다며 하늘을 원망하던 독자들, 이 책을 다 읽을 즈음에는 가족에게, 친구에게 전화 한 통 하면서 삶을 풀어 나가게 될지도 모른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트랜드뉴스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