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외교가 오랜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분위기다. 올해 북핵 6자회담 2·13합의로 북-미 관계가 해빙 무드를 타면서 북한이 최근 선보이고 있는 다양한 외교활동에는 일종의 자신감마저 엿보인다. 그러나 북한은 내부적으로는 주민들에 대한 강력한 단속과 통제를 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외교의 봄=북한은 올해 전 세계 다양한 국가에 당·군·정 고위 인사가 이끄는 대표단을 파견해 폭넓은 외교활동을 벌였다.
그 결과 올해에만 5개국과 대사급 외교관계를 새로 수립했고 2개국과 단절됐던 외교관계를 복원했다. 제2차 북핵 위기가 터진 2002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 동안 불과 3개 국가와 외교관계를 맺은 것과 비교하면 큰 차이가 있다.
북한은 이달 16∼19일 부산에서 열린 제4차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사이버테러 세미나에 정성일 외무성 부국장 등 당국자 4명을 파견했다. 북한이 남북 간 회의를 제외하고 남한에서 열린 국제회의에 정부 대표단을 파견한 전례는 거의 없다.
중국 신화통신이 발행하는 시사주간지 국제선구도보(國際先驅導報)는 22일 “북한이 미국과의 관계 개선 조짐이 보이고 있는 현 시점을 오랜 침묵을 깨고 국제무대로 나갈 적기로 판단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북한의 활발한 외교활동은 새로운 변화에 대한 기대감도 낳고 있다.
북한은 2000년 6월 남북 정상회담 이후 2년 동안 유럽연합 및 17개 자본주의 국가와 외교관계를 수립했다. 외교적 성과는 과감한 경제 개혁으로 이어졌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은 2001년 1월 중국 상하이를 방문해 ‘천지개벽’이라며 발전상에 감탄하는 발언을 했고 그해 10월에는 “사회주의 원칙을 고수하면서 최대한 실리를 도모하고 경제 관리 방식을 혁신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 지시는 국가 기능 축소와 경영 자율성 부여, 분배 차등화 등을 골자로 한 2002년 7월 1일 경제관리조치와 그해 9월 신의주 경제특구 발표로 현실화됐다. 그러나 이후 2차 북핵 위기가 터지면서 북한의 개혁 시도는 불발로 그쳤다.
최근 북한이 대외관계에 적극적인 이유가 북-미관계 개선 기회를 놓치지 않고 미완의 꿈으로 그친 5년 전의 경제 개혁을 다시 추진하기 위해서라는 분석도 나온다.
▽북한 내부 분위기는 살벌=북한은 최근 내부적으로는 장사(상거래)와 같은 ‘비사회주의적 현상’에 대해 강력한 단속 의지를 보이고 있다. 몇 년 동안 주춤하던 공개 처형도 다시금 늘고 있다고 중국에 있는 북한 소식통들이 전했다.
다만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시기에는 생계형 범죄가 공개처형의 대상이었지만 최근에는 매춘, 마약 밀매 등을 통해 부정 축재한 권력형 비리 행위에 대한 처형이 늘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장사에 대한 단속도 전례 없는 강도로 진행되고 있다. 이달 들어 장마당에서는 고령자를 제외한 40대 미만 여성들이 모두 단속 대상이 되고 있다.
한편 북한은 장사를 막는다는 명목으로 주민들의 유선전화 통화를 차단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 주민들은 2000년 이후 집에 전화를 설치해 왔다. 설치비로 200달러가 넘는 거금이 들지만 다소나마 재산을 모은 사람들은 너도나도 집에 전화를 설치했다. 전화는 주민들에게는 다른 지방의 시세를 알 수 있는 장사의 필수적인 수단이지만 당국에는 감추고 싶은 정보를 신속히 전국과 대외에 전달하는 골치 아픈 존재이기도 하다.
체제 안정을 도모하기 위한 행사도 이어지고 있다. 특히 27, 28일 이틀 동안 평양 4·25문화회관에서 13년 만에 열린 전국 당세포비서대회가 대표적인 사례다. 당세포비서는 군대의 분대장과 비교할 수 있는 당 조직의 말단 간부이다.
이 대회에 참가한 세포비서들은 김 위원장에 대한 충성을 다짐하고 ‘제국주의자 반동들의 비열하고 악랄한 심리모략전과 사상문화 침투 책동을 단호히 분쇄할 것’을 다짐했다.
북한의 내부 단속은 2002년 7·1 경제관리개선조치 이후 해이해진 국가 기강을 바로잡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앞으로 있을 수 있는 정책 변화에 따라 내부적 동요가 나타나는 것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미리 긴장된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