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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김주영의 그림 읽기]폭력은 우리들의 삶을 초토화합니다

입력 | 2007-10-27 02:58:00


수백 년 동안 자란 가로수 한 그루를 눈 깜짝할 사이에 베어 버린 이 사내의 표정에서 분노나 살기를 찾아볼 수 없습니다. 오히려 매우 평화로워 보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이처럼 끔찍한 폭력이 난무합니다. 그런 폭력 중에서 가장 소름 끼치는 것은 분노하지 않고 저지르는 폭력입니다. 억울한 침해를 당했다든지, 물리적으로 치명적인 피해를 봤다든지 하지 않았는데도 흡사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사소한 일처럼, 정말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능숙하게 저지르는 폭력이 그것입니다.

이 대담하고 야만적인 사내의 손에는 아직도 도끼가 들려 있습니다. 그리고 그 표정에는, 잘라 버린 나무 한 그루로 말미암은 도미노 현상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한 치 앞으로 들이닥친 재앙을 눈치 채지 못하는 우둔한 사람에게는 눈길 한 번 주지 않습니다.

밀집돼 있던 숲은 삽시간에 초토화되어 바람과 물, 새들과 짐승들, 숲 사이로 촘촘하게 내리쬐던 짜릿한 햇살, 그리고 바람을 타고 흐르던 풀과 꽃들의 향기, 산허리에 조용하게 걸리던 안개 자락은 멀리로 사라져 소멸돼 버릴 것입니다. 이 모든 피폐한 모습은 도끼를 손에 든 이 음험한 자객의 야만적인 취향 때문에 벌어진 결과입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도 우리와 똑같이 파멸의 길을 걷게 되리라는 점을 깨닫지 못한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똑같은 복장으로 어깨를 나란히 하고 도열해 있는 병사의 열병식. 나무 상자에 빈틈없이 채워진 한과. 꽃으로만 채워진 김종학의 유채화. 망자의 영정을 중심으로 빼곡하게 꽂은 국화. 좁은 공간에 수십 명이 들어가 찍은 가족사진. 고랭지에서 키운 배추의 속살. 웃고 있는 젊은이의 입 속으로 들여다보이는 빈틈없는 치열. 욕조에 수북하게 쌓여 있는 비누거품. 젖먹이 아이의 간드러진 웃음소리. 젊은 여자의 풍만한 젖가슴. 강원도산 찰옥수수.

이 모든 것은 송곳 꽂을 틈도 없을 듯한 완벽한 밀도와 충만의 이미지를 갖고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팽만감으로 말미암아 어떤 공격에도 단단한 방어력을 가진 듯이 보입니다. 그러나 이것 역시 영혼이 오염된 폭력에 휘둘리게 되면 애써 일으켜 세웠어도 남는 것이 없어집니다. 전쟁이 대표적인 사례가 되겠지요. 그러나 전쟁 아닌 사소한 폭력이라도 야료를 부리기 시작하면 모든 것은 파멸로 치닫고 말겠지요.

작가 김주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