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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김주영의 그림 읽기]바다 위에는 버스 정류소가 있다

입력 | 2007-09-08 02:59:00


찌는 듯이 무더운 여름날 오후입니다. 백사장 너머로 아득하게 바라보이는 수평선 위로 홍콩의 번화가를 탈출한 2층 버스 한 대가 달려가고 있습니다. 오랑우탄이 운전하는 버스는 조금 전, 해변에 있는 정류소에다 백상아리 한 마리를 내려 주었습니다. 버스의 단골 고객인 그 백상아리는 모래 속을 파고들어 쾌속으로 달릴 수 있는 경이적인 작동 능력을 지녔습니다. 바다로 떠난 빨간 버스의 아래층에는 호전적인 돌고래를 괴롭히다가 아가미와 꼬리까지 물어뜯긴 상어 두 마리가 산소 호흡기를 장착한 채 누워 있습니다. 버스는 그들을 인어 간호사들이 대기 중인 두 번째 정류소 근처에 있는 수중종합병원 응급실에 내려 줄 것입니다. 버스 뒷좌석에는 세 번째 정류소에서 잠수정으로 환승할 넙치와 고등어 가족이 타고 있습니다. 몇몇 승객은 가오리와 물개들이 펼치는 발레공연을 관람하기 위해 수중오페라 극장 앞에서 내릴 것입니다. 네 번째 정류소에서 내릴 승객들은 그곳에 정박해 있는 비행선으로 갈아타고 일주일 여정으로 토성으로 출발할 것입니다. 내일 아침 다시 뭍으로 되돌아올 버스는 피서객들 앞에서 우람한 체격을 뽐내고 있는 고릴라를 태우고 히말라야로 떠날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갈매기의 날개를 훔쳐 달고 날아가는 돼지를 싣고 구름집으로 떠날 테지요.

그런데 우리는 이처럼 황당한 것들에 대하여 익숙하지 않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대개는 그처럼 비현실적인 것들에 대하여, 엉뚱한 것들에 대하여, 가당찮은 것들에 대하여 경멸하거나 무시해 버립니다. 그러나 생각해 봅니다. 현대 문명이 거둔 물리적 혹은 정서적 수확 가운데 상식적으로는 도저히 수긍할 수 없었던 상상력에서 출발하지 않은 것은 단 한 가지도 없었습니다. 문득 우리 뇌리를 전광석화처럼 스쳐 가는 생각의 작은 편린들조차도 그래서 하찮은 것들이 아닙니다. 갈매기처럼 날고 싶다는 꿈을 끈질기게 갖는다면, 설혹 돼지라 하더라도 언젠가는 날개를 가질 수 있다는 사례는 어렵지 않게 발견합니다. 창의력도 그런 꿈과 상상력의 토양 위에서만 가능하겠지요. 인간과 겉모습이 흡사하고, 두뇌 기능까지도 유사한 유인원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장차는 우리 인간과 같은 반열에 놓이게 될지 모른다는 겸연쩍음도 가능케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괜한 걱정이며 우려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에게 있는 미래에 대한 고결한 꿈과 상상력이 그들에겐 없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