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컨설팅업체의 모 컨설턴트는 2, 3년 전에 러시아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러시아에 한두 달 다녀온 것에 불과합니다.”
“해외 대학 출신으로 알려진 국내 제약회사의 고위 임원은 정규 과정이 아니라 어학연수를 다녀온 것이라는데….”
국내 중견 제약회사인 중외제약이 직원들을 대상으로 학력 검증에 나서기로 한 사실이 27일 본보 단독 보도를 통해 알려지자 각계 인사의 허위 학력과 경력을 지적하는 제보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한 독자는 “컨설턴트의 해외 학위가 의심스럽다”며 특정 컨설팅업체 홈페이지를 첨부한 e메일을 기자에게 보내왔습니다. 또 “외국계 제약회사 고위 간부가 과거 다른 외국계 기업에서 단기 인턴으로 일한 경력을 재직 경력으로 속이고 있다”는 ‘경력 세탁’ 제보도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기자를 놀라게 한 것은 ‘무자격 미국 변호사’가 국내에서 버젓이 활동하고 있다는 ‘충격적인’ 증언이었습니다.
국내 대기업에 근무하는 미국 변호사는 “몇 년 전 국내 로펌에서 일할 때 미국 변호사 자격증이 없는 ‘가짜 변호사’와 함께 일한 적이 있다”며 “이 친구가 지금도 국내에서 활동한다는 얘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고 말했습니다.
이는 ‘학력과 경력 부풀리기’가 학계와 문화계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에 퍼져 있다는 증거일 것입니다.
‘허위 학력 논란’을 ‘학벌주의의 또 다른 모습’ ‘취업난과 극심한 경쟁이 낳은 부작용’ 등의 문제로 돌리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능력만 있다면 학력은 큰 문제가 아니다”라는 동정론도 일고 있습니다.
하지만 ‘학벌주의’나 ‘취업난’ 등의 사회 구조적인 문제가 ‘학력과 경력 부풀리기’를 용인하는 면죄부가 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미국 경영학의 거두(巨頭)인 피터 드러커는 저서 ‘프로페셔널의 조건’에서 세계는 지식을 효율적으로 생산하고 활용하는 ‘지식 근로자’의 시대로 바뀌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지식 근로자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사회에서는 학력보다는 능력, 능력에 앞서 ‘엄정한 자기관리와 도덕성’이 요구됩니다. 우리 사회의 ‘학력괴담(怪談)’은 ‘한국 프로페셔널(전문가)’의 현주소가 어딘지 되묻고 있습니다.
박용 기자 park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