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3월부터 개성공단에서 내수용 완제 의류를 생산하고 있는 ㈜신원의 북한 공장 내부. 개성공단 입주 기업들은 7년 만에 재개되는 남북 정상회담이 한반도 긴장 완화에 기여할 것으로 본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삼성 현대·기아차 LG SK 등 주요 그룹들은 8일 ‘2차 남북 정상회담’ 소식에 일제히 ‘환영’의 뜻을 표명하면서도 대북(對北)사업 신규 참여나 확대에 대해서는 대체로 유보적인 반응을 보였다. 정치적인 변수가 적지 않은 데다 북한의 인프라 부족 등 대북사업을 활성화하기에는 걸림돌이 적지 않다는 판단 때문이다. 다만 은행 등 금융업계는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대북 진출 기회가 확대될 것으로 기대했다.》
○대북사업 본격화는 시기상조
삼성그룹은 “이번 정상회담이 남북관계 진전이나 북한 핵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 것”이라면서도 대북사업과 관련한 그룹 방침에 대해선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현재 진행 중인 대북사업이 없는 데다 정치적 사안에 견해를 밝힌 전례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현대·기아자동차그룹은 “수출 비중이 높은 그룹으로선 남북 정상회담이 한반도 평화 정착에 도움을 준다는 점에서 호재”라며 “하지만 북한 투자 계획은 현재까지는 검토한 바 없다”고 밝혔다.
LG전자가 1996년부터 평양 인근에서 임가공 형태로 연간 1만∼2만 대의 브라운관TV를 생산하고 있는 LG그룹도 “이번 회담을 계기로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돼 글로벌 기업 환경이 더욱 좋아지고 남북 경협이 활성화되기를 기대한다”면서도 대북사업 확대 방안에 대해서는 “현재로서는 구체적인 확대 계획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SK그룹은 “현재까지 구체화하거나 검토한 대북사업은 없다”면서 “남북 경협에 따른 제도적 인프라가 완비되면 정부의 가이드라인 안에서 도움이 되는 사업을 구상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한때 북한산 철광석에 관심을 보인 것으로 알려진 포스코는 “북한산 철광석의 품질이 너무 낮아 국내 반입이 쉽지 않을 것”이라며 부정적 견해를 밝혔다. 북한산 철광석은 철 함유량이 35% 수준으로 70%의 외국산에 비해 품질이 낮다는 설명이다.
북한과 합작법인을 세워 자동차를 생산하고 있는 평화자동차는 “남북 화해무드가 정착되면 자동차 관련 부품의 북한 유입이 지금보다 수월해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정상회담 후폭풍’ 경계하는 시각도
국내 주요 기업들이 대북사업에 유보적인 태도를 보인 데는 이유가 있다.
SK그룹 고위 관계자는 “평화체제가 정착될 경우 값싼 노동력에 의존하는 업종이라면 북한 진출을 고려할 수도 있겠지만, 대규모 설비 투자가 필요한 장치산업은 투자에 신중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삼성전자 기흥반도체 공장의 정전 사태에서 보듯 장치산업에서는 인프라 정비가 필수로, 전력 항만 등 기반 시설이 완비될 경우에만 대북사업을 본격적으로 검토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전자·정보기술(IT) 업계는 북한이 ‘테러지원국’으로 묶여 있는 한 민감한 전략물자가 많은 전자·IT 분야의 남북 경협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업계 일각에서는 남북 정상회담의 ‘후폭풍’을 경계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일부 기업은 정부가 북한의 무리한 경제 관련 요구를 들어주기 위해 국내 기업의 대북사업 확대를 압박할 수도 있다는 점을 특히 우려하고 있다.
○금융업계는 “가자 북으로”
제조업계와 달리 금융업계는 남북 정상회담 개최로 향후 북한 진출 기회가 확대될 것으로 기대했다.
8일 현재 북한에 진출한 국내 은행은 우리은행과 농협 등 2곳으로 각각 개성공단지점과 금강산지점을 현지에 냈다.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의 자금관리 주거래은행이던 외환은행은 국내 최초의 북한지역 점포인 금호출장소를 지난해 1월 대북 경수로 사업 중단과 함께 폐쇄했다.
하지만 남북 정상회담 이후 경제협력이 가시화되면 국내 은행의 북한 진출 움직임도 활기를 띨 것으로 보인다.
국책은행의 발걸음도 바빠졌다. 남북협력기금을 관리하는 한국수출입은행은 이번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정부의 기금 지원이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는 분위기다.
남북한 상호교류와 협력사업을 지원하기 위해 1990년 설치된 남북협력기금은 6월 말 현재 8조978억 원의 기금이 조성돼 △경수로 사업 대출 △식량 차관 △비료 지원 등에 7조2421억 원이 사용됐다.
배극인 기자 bae2150@donga.com
김상수 기자 ssoo@donga.com
김창원 기자 changkim@donga.com
::남북 경협 주요 일지::
1992년=남북기본합의서 발효
1994년=10월 북-미 제네바 합의에
따라 경협 활성화
1998년=고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
소떼 방북, 금강산 관광 개시
2000년=6월 남북 정상회담 및
6·15 공동선언 발표
2003년=개성공단 착공, 금강산 육로
관광 개시
▼한국産인정-관세문제 해결 기대감▼
2005년 4월 개성공단에 봉제공장을 세운 문창기업은 남북 정상회담의 결과를 지켜본 뒤 현재 750여 명에 이르는 현지 직원을 더 채용하겠다고 밝혔다.
긍정적인 정상회담 결과가 나오면 개성공단에서 만든 의류가 국내 내수시장뿐 아니라 해외시장에서도 상당한 경쟁력을 갖게 될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개성공단에 진출한 국내 기업들은 8일 남북 정상회담 소식에 개성공단의 경쟁력이 높아질 것이라며 크게 환영했다.
개성공단에 2000여 명의 현지 직원을 채용하고 있는 삼덕통상 문창섭 대표는 “그동안 북한의 미사일 발사 및 핵실험 등 정치적인 문제로 어려움이 적지 않았다”며 “화해 분위기가 조성되는 것만으로도 대환영”이라고 말했다.
입주 기업들은 또 정상회담을 통해 개성공단의 최대 취약점인 ‘3통(通)’ 문제가 해소되기를 바랐다. ‘3통’은 △자유로운 통행 △인터넷 등 편리한 통신 △간편한 통관 절차 등을 뜻한다.
개성공단기업협의회 측은 “현재 개성공단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4일 전에 통일부에 신고해야 하며, 업무를 마치지 못하더라도 신고한 체류기간 안에 나와야 한다”며 “정상회담에서 정상적인 기업 활동을 위한 ‘3통’ 문제가 논의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이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등에서 개성공단 생산품이 한국산(産)으로 인정받을 가능성이 높아질 것으로 기대하는 분위기였다.
한국산으로 인정되면 그동안 수출의 걸림돌으로 작용한 관세 문제가 해결돼 개성공단 생산이 크게 늘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한국무엽협회 측에 따르면 개성공단 생산품이 국내산으로 인정받게 되면 중국에서 생산된 제품에 비해 원가를 10% 이상 낮출 수 있을 것으로 분석됐다.
삼덕통상 문 대표는 “내수용 시장만을 위해 개성공단에 공장을 가동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며 “개성공단은 존폐 위기에 놓인 국내 중소기업의 ‘활로’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기문 개성공단기업협의회장도 “개성공단의 3단계 개발이 끝나면 국내 2000개 이상의 기업이 입주하는 납북 경제협력의 거점이 될 것”이라며 “정상회담에서 개성공단 문제가 의제로 다뤄지길 바란다”고 했다.
이나연 기자 larosa@donga.com
이지연 기자 chanc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