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영화 보면 이런 여자애 꼭 있다. 보통 여주인공의 친구로 설정되며 자신의 성적 매력을 십분 활용, 얼굴만 믿고 얌체같이 남자를 홀리다 비참한 최후를 맞는 미모의 캐릭터. ‘할리우드의 문제아’ 패리스 힐튼도 영화 ‘하우스 오브 왁스’에서 ‘빨간 란제리’만 입고 근육질 애인과 ‘섹시 댄스’를 추다 잔인하게 살해되지 않던가.
그리고 탄탄한 시나리오와 목을 조이는 섬뜩한 공포 효과로 주목받은 우리 영화 ‘해부학교실’(감독 손태웅, 제작 에그필름)에도 이에 못지않은 ‘빨간 속옷녀’가 있다. 낯선 이름, 하지만 어디서 본 듯한 얼굴 바로 신예 채윤서다.
‘해부학교실’은 해부학 실습에 참여한 6명의 의학도가 가슴에 장미 문신이 새겨진 아름다운 카데바(해부용 시체)를 배정 받은 뒤 의문의 죽음을 당한다는 내용의 메디컬 호러. 극중 채윤서는 남자친구 ‘찬용’(예학영)을 가운데 두고 가난한 집안의 악바리 전교1등 ‘은주’(소이)와 라이벌 관계를 이루는 공부보다 연애에 맹목적인 ‘지영’으로 분했다.
톡톡 쏘아붙이는 말투, 도도함과 자신감으로 상대방을 압도하며 다들 질색하는 실습실 옆에서 겁 없이 속옷 차림으로 남자친구와 진한 애정행각을 벌이는가 하면 이를 핸드폰 카메라에 담는 과감함까지 ‘지영’은 겉으로 보이는 채윤서의 이미지를 쏙 빼닮았다.
그러나 실제로 만난 채윤서는 화려하고 부티 나는 외모는 똑같았지만 차갑고 깍쟁이일 것 같은 영화 속 모습과 달리 수다를 좋아하고 붙임성 있는 성격이 호감 가는 친근한 아가씨였다.
“남자 배우와 애정신을 연기하는 게 처음이었다”는 채윤서는 “처음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고민이 많았다. 그런데 다행히 파트너인 예학영과 친구 사이라 편하게 얘기를 많이 나누다보니 자연스럽게 연기하게 됐다”며 쑥스러운 듯 혀를 쏙 내민다.
“노출도 노출이지만 예학영 씨와 실제 연인처럼 사랑스럽고 귀엽게 보여야 한다는 생각이 더 컸어요. 제가 아직 경력은 짧지만 유독 상대배우와 스킨십이 많았거든요. 올해 초에도 신화 이민우 씨 뮤직비디오에 출연했는데 거기서 계속 키스신만 해서 이슈가 됐었죠.”
“제가 섹시해 보이나요?”라고 되물은 채윤서는 “전 한번도 그렇게 생각한 적 없는데 다들 화면에서 보이는 이미지와 실제 제 모습이 많이 다르다고들 한다”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채윤서는 MBC ‘굳세어라 금순아’에서 ‘금순이’ 한혜진를 괴롭히는 미용실 직원 역을 맡아 처음 시청자들에게 눈도장을 찍었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을 널리 알린 건 KBS2 ‘연예가중계’를 통해서다. 예쁘장한 리포터로 활동하며 사랑받던 최윤서는 최근 들어 다시 연기자로 유턴 중.
‘떠 보려는’ 연예인 지망생들이 즐비한 이 바닥이다 보니 ‘혹시’ 리포터에 도전한 또 다른 이유가 있었냐고 넌지시 물었다. 그리고 ‘역시’ 성격대로 솔직한 답이 돌아왔다.
“연예계 데뷔 수단으로 리포터 활동하는 사람들도 분명 있어요. 전 그런 얘기가 듣기 싫어 정말 열심히 했거든요. 제가 연극을 전공해 졸업 후 대학로 극단에 들어갔어요. 애초 연기가 하고 싶었지만 기회가 없던 찰나 어떻게 리포터 자리가 주어졌고 이곳에서부터 인정받아야 연기를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죽어라 노력했어요. 이젠 곱지 않은 시선으로 절 보던 분들도 응원해 주세요.”
“‘해부학교실’을 통해 비슷한 또래 배우들 사이에 있으면서 저와 같은 얘기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너무 즐거웠다”는 채윤서는 “사실 제겐 부족한 것 투성이지만 지금은 연기를 한다는 자체만으로도 너무 즐겁다. 앞으로 어떤 배역이 주어지건 모두 소화해 내겠다”며 부푼 각오를 다졌다.
인터뷰 중간 열심히 손짓해가며 설명하는 그녀의 팔 군데군데에는 시퍼런 멍이 들어 있었다. 얼마 전 체코에서 신인가수 ‘휘’의 뮤직비디오를 촬영하던 중 역할에 너무 몰입한 나머지 전력 질주를 하다 그만 넘어져 생긴 상처들이란다.
“아프지 않냐”고 묻자 “재밌었다”고 웃음보를 터트리며 대꾸한다. 채윤서는 “연기인데 살살할 수 없지 않느냐”며 “관객들은 다 안다. 배우가 진짜로 부딪치고 소리쳐야 제 연기를 진짜로 받아들인다”며 당연하다는 듯 말한다. 무엇이든 최선을 다한다는 ‘욕심쟁이’ 그녀, 다음 단계를 위한 채윤서의 더 큰 날갯짓을 기대해본다.
스포츠동아 이지영 기자 garumil@donga.com
사진=임진환 기자 photolim@donga.com
[화보]‘해부학교실’로 주목받은 리포터 출신 연기자 채윤서
[화보]‘해부학교실’ 주연 맡은 ‘호러퀸’ 한지민 화보 촬영장
[화보]‘티티마’ 전 멤버서 ‘해부학교실’ 배우로 돌아온 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