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영등포교차로와 신촌오거리, 대구 두류네거리를 각각 관리하는 지방자치단체들은 문제투성이 도로를 왜 방치하고 있는 것일까.
해명은 한결같다. 모두 구조적 문제가 크다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예산 문제와 시민 불편을 이유로 당장 손을 댈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더 이상의 사고를 막기 위해서는 한시라도 빨리 개선을 해야만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시내도로를 총괄하는 '도로관리청'과 같은 기구를 만들어 중앙정부 차원에서 체계적인 정비사업을 추진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도로 정비도 부익부 빈익빈
도로교통안전관리공단은 매년 교통사고가 잦은 곳을 조사해 이 중 900여 개 지점을 선정, 각 지자체에 개선안을 내려 보낸다. 하지만 이 중 공단의 개선안에 따라 정비작업에 나서는 지자체는 절반도 되지 않는다.
상당수 지자체는 빠듯한 살림살이 탓에 거액이 들어가는 대규모 도로개선 사업을 추진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더욱이 시내 도로라도 도로 폭에 따라 관리 주체가 각기 다른 것도 도로 정비사업을 더디게 만드는 한 요인이다.
도로 폭이 20m(통상 왕복 8차로) 미만은 기초자치단체가, 20m 이상은 광역자치단체가 각각 관리하고 있다.
이수범 서울시립대 교통공학과 교수는 "폭이 30m인 도로와 15m인 도로가 만나는 교차로의 경우 누가 이를 정비해야 하는지 혼선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 현행 도로교통법에서는 도로 개선사업을 할 경우 반드시 관할 경찰서의 승인을 받도록 돼 있다. 신호등이나 횡단보도를 설치하는 간단한 개선작업도 복잡한 행정절차를 거쳐야 하는 것이다.
이 교수는 하루빨리 시내 도로를 총괄하는 '도로관리청'을 신설할 것을 주문했다.
●결국 표가 문제?
하지만 지자체가 도로 개선사업을 우선순위에 놓지 않는 데에는 예산 문제 못지않은 복잡한 계산이 깔려있다.
바로 시민들의 항의다.
지하차도나 입체 교차로 건설 등 제대로 된 도로 개선을 위해서는 최소 2년 이상이 걸린다. 그 기간 교통체증은 불 보듯 뻔하고 시민들의 항의는 쏟아지기 마련이다.
익명을 요구한 서울지역 한 구청의 교통담당 공무원은 "4년에 한번씩 선거를 치러야 하는 자치단체장 처지에서 주민들의 불만이 터져 나올 가능성이 큰 도로 개선사업을 과감하게 시행한다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고 털어놓았다.
때문에 전문가들은 도로 정비를 위해서는 높은 시민의식이 뒤따라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 교수는 "교통사고로 인한 시민들의 인적, 물적 피해는 사고발생 지역이 현재의 모습대로 유지되는 한 계속될 수밖에 없다"며 "결국 시민을 위한 사업임을 충분히 설명하고 이해를 구한 뒤 최대한 신속하게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선진국은 어떻게 개선하나
복잡한 도로 구조는 비단 한국만의 현상은 아니다. 선진국 역시 도시가 팽창함에 따라 여러 방면으로 향하는 도로를 이어 붙인 다지(多枝)교차로가 적지 않다. 하지만 도로 개선을 위해 접근하는 방식은 한국과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김기혁 계명대 교통공학과 교수는 "독일이나 프랑스는 도로 개선사업을 할 때 곧바로 공사에 들어가지 않는다"며 "다양한 실험을 해본 뒤 최선의 방안을 선택한다"고 말했다.
5개 방면으로 향하는 교차로가 있을 경우 순차적으로 특정 방면의 도로를 막거나 신호체계를 바꾸어가며 상당기간 운영해본 뒤 개선 효과가 가장 높은 방안을 선택한다는 것이다.
도로공학적 계산 못지않게 운전자의 습관이나 예상치 못한 부작용을 꼼꼼히 체크해야만 최적의 방안이 나온다는 신념 때문이다.
당연히 이런 테스트 기간에 운전자는 큰 불편을 겪지만 이를 불평하는 운전자는 많지 않다는 것도 한국과 다른 점이다.
전문가들은 이와 함께 외국에 비해 교통사고 현황을 밝히기 꺼려하는 정부의 태도에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임삼진 한양대 교통공학과 교수는 "캐나다 토론토 시의 경우 사고가 난 뒤 한 달 정도가 지나면 누구나 시청 홈페이지를 통해 개인 인적사항을 제외하고 사고 장소와 시간, 유형, 피해 상황을 상세하게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를 통해 운전자들은 사고 다발지역을 정확히 알아 방어운전을 할 수 있고, 연구자들은 교통사고에 대한 기초 자료를 쉽게 수집해 도로 개선 연구에 활용할 수 있는 것이다.
임 교수는 "우리나라는 한 달 전의 사고는 고사하고 1년 전의 사고 자료조차 구하기 힘든 곳"이라고 꼬집었다.
김동욱기자 creating@donga.com
한상준기자 alwaysj@donga.com